[디지털타임스 박정일 기자] 지난달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별세로 사실상 '창업 1세대' 시대가 막을 내렸다. 지난해 1월에는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의 장녀이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누나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 별세했고, 4월에는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이 타계했다. 작년 말에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영면에 들어갔다.
'창업 1세대' 시대가 끝나고 이제 재계는 3~4세 총수 시대에 본격 진입했다. 이들 총수들은 이제 창업과 성장의 시대를 지나 생존을 위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위기의식이 담겨있다. 전자와 자동차, 철강·조선, 정유·화학 등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기존 주력 사업으로는 성장 한계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의 지배구조 개선 압박이 이어지고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도 극에 달하는 등 대내·외 불확실성은 극에 달하고 있다.
이 같은 변수가 아니더라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진입하면서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중국과 아세안 국가의 기술력이 높아지면서 우리 기업들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맨 땅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창업가 정신'을 되살리기 위한 재계 총수들의 노력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재계 총수들이 강조하는 메시지를 보면 '혁신'과 생존을 위한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설 연휴 직후 브라질 현장에 방문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힘은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에서 나온다"며 "과감하게 도전하는 개척자 정신으로 100년 삼성의 역사를 함께 써 나가자"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은 올 초 신년회에서 "미래 시장에서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한 원년으로 삼고자 한다"며 "혁신을 지속해나간다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더 신뢰받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세계 최대 IT(정보기술) 전시회인 CES(소비자가전쇼) 2020에 직접 찾아가 미래 모빌리티의 비전을 보여줬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경우 별도의 메시지를 내지 않은 대신 행동으로 변화의 의지를 보여줬다. 신년사 없는 신년회를 했고, 신입사원과의 대화 역시 관례를 깨고 젋은 인재들과 더 가까워지려는 모습을 보였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시무식 대신 디지털 영상으로 신년사를 대체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5년 뒤 모습도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라며 "선제적 혁신을 통해 '게임 체인저'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 총수들은 미래 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직접 발로 뛰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2030년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 달성이라는 새 목표를 제시했고,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구글 애플 삼성 등 IT업체보다 더 빠르게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며, 미래 모빌리티 사업 발굴을 위한 글로벌 합작에 공을 들이고 있다.
최태원 회장 역시 지속가능한 기업을 만들기 위해 전 세계를 다니며 사회적 가치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고, 구광모 회장은 미래 R&D(연구·개발) 인재 육성 관련 행사에는 거의 빠짐없이 참석해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