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날마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시작은 밝혀지길 원하는 새로운 지평이고,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진정한 시작을 맞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를 위해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더 많은 시간? 새로운 환경?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힘'일 테다. 이미 내 안에 존재하는 것을 밝혀 드러낼 수 있는 마음의 힘, 나에 대한 '믿음'과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갈 '용기'를 품고 있는 그 힘 말이다.
소프라노 홍혜란의 새로운 지평도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데서 시작됐다.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나 외면하고 있던 나의 모습. 그것에 믿음을 가지고 당당히 드러낼 용기를 품으니, 자연스레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나는 노래하는 사람
강원도에서 나고 자란 홍혜란은 대전예고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를 거쳐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석사와 최고연주자과정을 공부하고,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서며 이듬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달렸다. 반짝이는 실력과 노력은 그녀를 그다음, 또 그다음 길로 이끌었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분명한 원동력이 된 것은 바로 '가족'이다. 음악에 대한 사랑과 열정도 분명히 있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 같다. 나를 응원해 주고 지지해 주는 가족이 없었다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지 않았을까."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노래, 그런데 이 길을 따라 위로 올라갈수록 홍혜란은 마음에 공허함이 들었다고 했다. 줄리아드 재학 시절, 한 교수님이 자신을 '경주마'라 불렀을 정도로 열심히 달리며 꿈을 좇았는데, 마음은 좀처럼 채워지지 않았다고. 꿈에 다가갈수록 공허함도 함께 커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미국이라는 무대에서 생활하며 어느 순간 나 자신을 자꾸 거부하게 되더라. 내 뿌리와 본래 가진 캐릭터까지. 국제적인 무대에서는 내가 지닌 한국 사람으로서의 냄새를 빼야 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노래할 때도 말할 때도 미국에서 태어났느냐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해야 하다 보니 그 판단의 기준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시선이 되어 버렸다."
다른 것은 다 좋은데 외모에 있어 동양적인 색채가 너무 강하다는 말, 체구가 작아 전형적인 소프라노 혹은 오페라 가수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그녀를 더욱 치열하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는데, 당시에는 그마저도 깨야 한다고만 생각해서 화장도 화려하게, 옷도 화려하게 입어보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의 시선에 갇혀 지내던 홍혜란에게 새로운 전환의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은 또다시 '가족'이었다.
"한예종에서 객원 교수 생활을 시작하고, 재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한국에서 가족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을 통해 내가 꼭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아도 나라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하고 귀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비로소 나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굳이 내 외모를 정형화된 성악가의 상에 맞추지 않아도 내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고, 내 노래에 박수쳐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다른 외적인 부분들이 더 이상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더라. '나는 누가 뭐래도 노래하는 사람, 평생 노래하며 살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며 그동안의 부담감과 공허함이 사라졌다."
사랑했던 아버지의 죽음은 그녀의 삶과 음악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아버지께서는 항상 "너무 유명해지려 하지 말아라. 그것보다 네 삶에서 중요한 것과 행복한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돌아가시기 전 보내온 문자 메시지도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니 사실 내 꿈은 그저 '노래하는 것'이더라. 그런데 어느 순간 더 유명한 곳에서, 더 유명한 사람들과, 더 인정받으려는 욕심이 더해지며 꿈이 변질된 것이다. 지금은 내가 본래 가지고 있던 꿈을 다시 찾아가고 있다."
이름의 무게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그만한 책임감과 무게감을 갖는다. 예술가, 음악가, 아티스트가 지니는 무게도 상당할 테다. 홍혜란에게 진정한 예술가의 모습은 무엇일까.
"내 이름 앞에 이러한 수식어를 붙이기에는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과 노래는 내 평생의 직업이다. 성악가로서 아직 중반의 길에 서 있고, 풍부한 예술을 표현하기 위해 삶 속에서 겪어야 할 일도 많다. 피아니스트 백건우 선생님과 백혜선 선생님을 정말 존경하는데, 이 두 분을 보면 삶과 예술이 나누어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삶 자체가 예술처럼 느껴진달까. 평소 살아가는 모습만으로도 눈물이 나고 감동이 되더라. 그 정도가 되어야 스스로 아티스트, 예술가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흔히 예술가는 타고나는 것이라던데. 홍혜란의 첫 목소리는 어땠을지 궁금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 다르기 때문에 어느 목소리가 꼭 성악가의 목소리에 맞는 것이라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성악가로서 계속 노래하고 싶다면 음악을 하겠다는 '의지'와 테크닉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음악적 센스'가 더 중요하다. 어떤 선생님을 만나서 교육 받느냐에 따라 목소리는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타고난 사람이 아니었다. 성격도 얌전하고 목소리도 크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은 극복 가능한 일이라고 더 확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녀의 목소리는 어떻게 변해왔을까,
"나는 가벼운 소리를 내는 레제로로 타고났다. 그러나 그 영역에만 머물기에는 강한 성격도 가지고 있어 리릭 콜로라투라나 콜로라투라 역할까지 노래했다. 벨칸토나 모차르트가 지금 내 목소리에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하지만, 오페라 시장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매우 다양하다. 예전에는 이 또한 나의 단점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만큼 여러 역할을 열어두고 생각할 수 있다는 면에서 장점이 된 것 같다."
꿈을 담은 노래, 희망가
지난해부터 홍혜란에게 이어진 변화들이 있다. 객원교수로 활동하던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전임교수로 임용됐고, 오랜 기간 공들여 준비한 첫 음반이 1월에 출시되며, 6월에는 그토록 바라왔던 아이와의 만남을 앞두고 있다.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가졌던 꿈이 있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가족들, 친구들, 그리고 나를 사랑해주는 모든 분이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고, 흥얼거리며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부르고, 그런 음반을 내는 것이었다."
홍혜란은 이 오랜 꿈을 자신의 데뷔 음반으로 펼쳐냈다. 연주자에게 첫 명함과도 같은 데뷔 음반에 유명 오페라나 가곡이 아닌, 한국 가곡만을 담아 첫발을 내딛는 것이다. 음반은 2018년 가을에 첫 기획을 시작해 지난해 1월, 뉴욕의 아메리칸 아카데미 오브 아츠 앤 레터스 오디토리움에서 녹음을 마쳤다. 프로듀싱은 테네시 벨몬트 대학의 고도윤 교수가 맡았고, 작곡가 김택수를 필두로 문종인, 오은철 등이 작·편곡으로 참여했다. 연주는 김동민이 이끄는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가 함께했다.
"노래를 부르며 '내 몸에 흐르는 피가 이 노래를 알고 있구나, 내가 해야만 하는 노래다'라는 생각과 함께 한국 가곡에 대한 사명감도 더욱 높아졌다. 이를 더 알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현재 가사를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 중에 있다. 미국에서 디지털 음반으로도 선보일 계획이다."
음반에는 총 12곡이 담겨있다. '산촌'으로 시작해 '봉선화' '엄마야 누나야' 등을 지나 마지막 '희망가'로 끝을 맺는다. 수록곡 중 '아리랑 연가'는 작곡가 김택수가 이번 음반을 위해 새로 작곡한 것으로 남편인 테너 최원휘와 듀오로 부른다.
"모든 곡이 소중하지만, 특히 타이틀곡인 '희망가'에 가장 마음이 간다. 노래의 가사 속에 아버지가 항상 해주시던 말씀이 담겨있어서다. 아버지는 노래를 참 잘하셨다. 운전하실 때면 항상 휘파람을 불거나 노래를 부르시곤 했는데, 부드럽고 편안했던 아버지의 목소리에 대한 기억을 최대한 살려, 그 음성을 따라 녹음하고 싶었다."
인터뷰 내내 홍혜란의 말속에는 음악과 삶에 대한 사랑이 넘쳤다. 또렷하고 단단한 생각들을 밝은 기운으로 내보이는 그녀를 보니 제자들 앞에 선 모습 또한 궁금해졌다.
"성악가로서 중요한 기초를 다지는 시간은 대학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내 것을 충분히 전달하는 것은 물론, 그들을 지키고 보호할 수 있는 역량이 될 때 학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제자들에게 "성악가는 연예인이 아니다. 그것만 좇지 말고 노래하는 것을 사랑하라"고 강조한다. 성악가라는 직업은 마라톤과 같아서 유명세와 화려함만으로는 얼마 버티기 힘들다. 노래를 정말 사랑하고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을 가지고 평생을 가야 지쳐 쓰러질 때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그 무엇보다도 노래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내게 배워갔으면 좋겠다."
변하지 않는 것
"나에게 노래는 일등!" 홍혜란에게 노래는 가장 먼저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떼어놓는 일순위다. 그녀에게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에 관해 물었다.
"예술가의 삶은 조금 특별할 뿐이지 평범한 삶과 다르지 않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며 느끼고 공유한 감정들이 성악가라는 모습에서 특별함으로 발휘되는 거다. 따뜻하고 깊이 있는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만나고, 공감해야 한다."
일상에서 예술을 만들어 내는 아티스트를 꿈꾸며 홍혜란은 또 한 가지 비전을 내보였다.
"예전부터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읜 친구들에게 유난히 마음이 갔다. 그 아이들을 찾아가 공연을 선보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내 역량을 더 키워서 음악적 재능이 있는 아이들에게 음악가로서 성장할 기회를 주고 싶다."
음악은 인생의 순간들을 캡처한다. 그 순간 느낀 나의 감정, 내 상황들을 담아 기억 속에 저장된다. 변하지 않는 소중한 가치가 만들어 내는 홍혜란의 따뜻한 노래 또한 누군가의 일상에 닿아 행복함으로 저장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