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 계열인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SKTI)이 임차한 선박(왼쪽)이 해상 블렌딩을 위한 중유를 다른 유조선에서 수급 받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제공>
[디지털타임스 박정일 기자] 수출 효자노릇을 하던 정유·화학이 실적 악화로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등에 따른 세계 경제 불황으로 정유·화학업체의 수익성과 직결되는 정제마진은 마이너스로 추락했다. 반면 중동 긴장 고조로 100%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원유 가격은 상승해 무역수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정유·화학이 우리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반도체 다음이어서 우리 수출 전선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싱가포르 기준 복합정제마진은 지난 16일 종가 기준으로 배럴 당 -0.27 달러를 기록했다. 작년 말 잠시 플러스로 돌아섰다가 다시 마이너스로 추락한 것이다.
정제마진은 최종 석유제품인 휘발유·경유·나프타 등의 가격에서 원유 수입가격과 운임·정제 비용 등을 제외한 값이다. 업계에서는 정제마진 4달러 대를 정유업계의 손익분기점으로 보고 있다.정제마진이 마이너스면 제품을 팔 수록 손해를 본다는 뜻이다.
반면 두바이유 가격은 작년 10월 말 58.45달러에서 지난 6일 68.28달러까지 치솟았다. 지난 17일 종가는 65.75달러로 여전히 60달러대 후반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 정유 산업은 주로 두바이유를 비롯한 중동산 원유를 수입해 이를 정제해 판매하는 구조로 이뤄진다. 유가가 오르면 수출금액도 늘어나는 효과가 있지만, 정제마진이 마이너스면 수출보다 수입이 더 큰 폭으로 늘어나 무역수지에 악영향을 준다.
석유화학 역시 마찬가지다. 업계에 따르면 1월 둘째주 에틸렌 가격은 톤당 775달러로, 호황을 맞았던 2018년 3분기 평균 가격(1240달러)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화학사 실적의 핵심인 에틸렌 스프레드(제품 가격에서 원재료 가격을 뺀 것)는 1월 첫째주 155달러를 기록해 손익분기점(톤당 25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정유·화학 업종 부진은 그렇잖아도 어려운 우리 수출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석유제품의 수출 비중은 전체의 7.5%로 단일품목 기준 5위권이고, 석유화학(4위)을 합치면 15.3%로, 1위인 반도체(17.3%)에 육박한다. 작년 한국의 무역수지는 반도체 가격 급락 등의 영향으로 전년도(697억 달러)와 비교해 거의 반토막 난 392억 달러를 기록했다. 반도체 시황이 소폭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석유·화학 부진이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다만 미중 1단계 무역합의가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오지만, 현재까지는 중동 지역의 불확성에 따른 유가상승 우려가 더 큰 부담이다.
문병기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중동의 지정학적 위험이 고조되고 국제유가가 급등하면 우리 정유·화학업체의 채산성 악화와 수출가격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