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윌런 지음 / 김희정 옮김
부키 펴냄
태평양의 미크로네시아연방국의 야프 섬 주민들은 거대한 석회암 원반을 다듬어 만든 '라이'라는 화폐를 사용했다. 라이는 400km 떨어진 팔라우 섬에서 캐어 배에 실어왔는데, 100년도 더 전에 라이 하나가 운송 도중 폭풍우를 만나 바다에 가라앉고 말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야프 섬 주민들은 그 라이를 계속 화폐로 통용했다. 실화인 이 이야기에 화폐에 대한 탁월한 통찰이 담겨있다. 저자는 화폐 즉 돈은 '기억'이라고 말한다. 돈은 누군가의 생산행위와 소비행위를 기억하고 그 정보를 주고받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논란거리인 '비트코인도 화폐인가'라는 질문에 라이는 답을 준다. 바다에 가라앉은 라이는 이미 크기, 가치, 소유권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상태였다. 그렇다면 그것이 어디에 있든 상관없다. 어디에 있든 가치를 지닌 것들을 교환하는 동안 추적해 대변과 차변에 기록하기만 하면 된다. 은행장부와 마찬가지인 셈이다. 중요한 것은 정보지 장부가 아니다. 이처럼 돈이 결산 또는 기록 보존 수단이라면 컴퓨터 코드로 만들어진 전자화폐 비트코인도 돌로 만든 라이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래서 돈은 기억이라고 하는 것이다.
책은 돈, 화폐, 그것을 통제하는 중앙은행, 그리고 금융시장을 흥미로운 시각으로 설명한다. 아무런 가치가 없는 종잇조각이나 장부 속 숫자에 불과한 물건(돈)이 부리는 마법이 소개된다. 온갖 돈 이야기를 통해 금융시스템의 작동원리 뿐 아니라 신용거래, 물가, 금리, 환율 등이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 찰스 윌런은 다트머스대 록펠러센터 공공정책 교수이자 선임연구원으로 경제 분야 주제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재주를 지닌 경제학자다. 이 책(원제 'Naked Money')을 포함해 '네이키드'(Naked) 시리즈의 저자로 유명한데, '벌거벗은 경제학'과 '벌거벗은 통계학'은 베스트셀러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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