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 관피아(관료+마피아 합성어) 바람이 불어닥쳤다. 그동안 민간 출신이 주류했던 금융공기업 자리 상당수가 관료 출신의 몫으로 되돌아가면서 새해부터 금융권을 뒤 흔들고 있다. 특히 금융위원회가 제청하고 청와대가 임명하는 3대 국책은행(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은 모두 관료 출신이 장악했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윤종원 청와대 전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관이 지난 2일 제 26대 IBK기업은행장으로 올랐다. 공식 취임식은 아직 미정이지만 윤 신임 행장은 3일부터 기업은행장으로서 내부 업무를 보고 있다. 윤 신임 행장은 1983년 행정고시 27회로 공직에 입문한 뒤 기획재정부 종합정책과장·산업경제과장,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국제통화기금(IMF) 상임이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특명전권대사,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등을 맡은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다. 기업은행 노조는 윤 신임 행장은 거시경제 전문가로는 잘 알려졌을지는 모르지만 금융 경험은 전무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그동안 10년 동안 내부 출신이 행장에 올랐는데 현 정권에서 낙하산 인사를 단행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윤 신임 행장 임명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2010년 조준희 전 행장을 시작으로 권선주·김도진 전 행장까지 3연속 내부출신 행장을 배출했다. 2013년 권 전 은행장이 최초의 '여성은행장'이란 타이틀을 쥐면서 기업은행에는 능력만 있다면 성별, 정권, 출신에 관계없이 은행장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퍼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도 있었다. 기업은행 내부에선 주요 임원을 차기 행장으로 밀어주고 동시에 다른 경쟁자를 음해하는 등 이른바 줄서기가 만연했던 것이 사실이다. 기업은행 출신 한 관계자는 "자신이 밀고 있는 인사가 행장이나 전무 등 고위직에 오르면 임기는 물론 임원 승진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사퇴를 하거나 타 지역으로 쫓겨나 듯 인사발령이 나는 일이 빈번했다"면서 "어느 줄에 서느냐에 따라 승진과 좌천이 갈린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경쟁자를 음해하는 글도 서슴치 않았다"면서 "상대의 약점을 잡아 언론 등에 제보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승진이나 인사 청탁 등 줄서기 등을 차단하기 위해 '원샷 인사'를 단행하고 있지만 이는 형식에 불과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와 금융당국도 기업은행의 이러한 줄서기 문화에 반감이 있었다는 것이 금융권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작년 말부터 내부 출신보다는 외부 출신을 정해놓고 후임을 물색했다고 한다.
다만 일각에선 줄서기 문화를 타파하기 위해 낙하산 인사를 투입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3대 국책은행이 모두 관료 출신이라는 점도 은행권 직원들을 허탈하게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방문규 수출입은행장은 행시 28회로 공직에 입문한 뒤 기획예산처 산업재정과장, 재정정책과장, 기재부 대변인, 보건복지부 차관 등을 거친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며, 이동걸 산업은행장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한 인사다.
한편 윤 신임 행장은 새 행장 임명 이후 노조의 출근 저지로 아직 기업은행 본사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는 현재 외부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상황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은행 노조가 금융노조와 함께 윤 행장 선임 반대 총파업에 나선다면 임명이 취소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면서 "이렇게 되면 윤 행장은 최단기 기업은행장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동안 기업은행 행장이 노조의 반대로 임명이 무산된 경우는 단 한차례도 없었다. 기업은행 노조 역시 "총파업 여부는 다음 단계에 논의할 사안이며 현재까지는 계획에 없다"고 선을 그었다.성승제기자 bank@dt.co.kr
윤종원 기업은행장이 지난 3일 오전 첫 출근을 시도했지만, 노조의 반발에 부딪혀 발길을 돌렸다.<사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