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박정일 기자] "지난 50년 간 혁신의 원동력은 어려울 때도 중단하지 않은 미래 투자였다…긴장은 하되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자." 작년 6월과 8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주요 경영진에게 한 말이다. 이 부회장의 경자년(庚子年) 새해 경영 행보 역시 이 두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의 뚝심있는 지원 속에 '초격차' 지속과 '신성장 사업 육성'을 위한 투자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대·내외 '퍼펙트 스톰'의 불씨가 남아있는 만큼, 현 경영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동시에 이 부회장이 직접 나서면서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기반을 다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포기하면 안된다" 주력사업 초격차 지속= 이 부회장은 지난해 8월 삼성디스플레이 사업장을 방문해 "지금 어렵다고 대형 디스플레이 사업을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후 삼성은 2025년까지 차세대 QD(퀀텀닷) 디스플레이 개발에 13조1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의 LCD(액정표시장치) 굴기로 시장이 급격하게 악화했음에도 주력 사업을 포기할 수 없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초격차 기술을 앞세워 시장의 판도를 바꾸면 다시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다른 사업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의 경우 폴더블폰으로 '게임체인저'의 이미지를 확실히 각인시키면서 동시에 중·저가 라인업도 포기하지 않았다.
TV 등 가전은 소비자에게 새로운 가치를 주는 '라이프스타일' 혁신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공간 가치를 높여주는 맞춤형 냉장고 '비스포크'를 비롯해, TV 프레임의 고정관념을 깬 '더 세로' 등 라이브스타일 가전 시리즈를 올해 역시 지속해서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주력 반도체 제품인 D램의 경우 EUV(극자외선노광장치) 조기 도입으로 미세공정 한계를 또 한번 돌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역시 EUV로 양강체제 구축을 목표하고 있다. 이 밖에도 스마트폰 등에서 수요가 늘고 있는 중·소형 OLED 패널을 앞세워 디스플레이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유지한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실적 악화에도 지난해 29조원 규모의 투자약속을 지켰다. 여기엔 반도체 등 주력 사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이 부회장의 의지가 담겨있다.
◇신성장·혁신 생태계 조성도 '뚝심있게'…총수 부재 가능성 변수= 신성장 사업 육성 방향 역시 지난해와 크게 다르지 않을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과 이미지센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모바일 AP, 차량용 반도체, 차세대 QD 등을 신성장 사업으로 키우는 중이다. 이 전략은 올해도 유효하다.
특히 AI와 5G, 자동차 전장사업 등은 이 부회장이 직접 발로 뛰며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 신성장 사업으로 꼽힌다. 소프트웨어 인재 육성과 혁신 스타트업 발굴 역시 이 부회장이 직접 찾아가 격려할 만큼 삼성전자가 각별히 챙기는 사업이다.
다만 변수는 '총수 공백' 상황이 재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컨트롤타워 격인 사업지원 테스크포스(TF)가 사법 리스크로 사실상 유명무실해지면서, 이 부회장은 지난해 내내 직접 동분서주하며 주요 계열사들의 경영과 투자를 진두지휘했다.
이 와중에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과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 등 핵심 경영진의 구속으로 이 부회장에 대한 의존도는 한층 더 높아졌다. 만약 연초로 예상되는 파기환송심 판결에서 이 부회장이 다시 구속될 경우 삼성전자는 사상 초유의 총수 공백 상태에 처할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 2017년 이 부회장의 구속 이후 1년 간 삼성전자의 신성장 사업에 대한 투자는 사실상 올 스톱됐다"며 "4차산업혁명의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서 전략적 투자를 결정할 컨트롤타워의 부재는 곧바로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이재용(가운데) 삼성전자 부회장이 작년 8월 20일 삼성 청년 소프트웨어 아카데미(SSAFY)광주 교육센터를 방문해 소프트웨어 교육을 참관하고 교육생들을 격려했다. 사진은 이 부회장이 교육생의 셀카 요청에 응하고 있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