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본회의 의결을 거쳐 2020년 정부 R&D(연구개발) 예산이 올해(20.5조원) 대비 18.0% 증액된 24.2조 원으로 확정되었다. 그간 정부지출 증가율에 크게 못 미쳤던 정부 R&D 예산이 다소 회복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미 지난 9월 정부는 '2019~2023 국가재정운용계획'을 통해 5년간 연평균 증가율을 10.8%로 제시하고, 2023년에는 정부 R&D 예산 30조원 시대를 전망한 바 있다. 이러한 정부 R&D 예산 증가가 과학기술계에 고무적이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 GDP 대비 R&D투자 비중이 세계 1위인데 비해 성과가 부족하다는 지적 등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부 R&D 예산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현재 투자 총량 규모는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다. 우리나라 GDP 대비 R&D투자 비중이 높은 것은 정부와 민간을 모두 합한 경우로, 정부의 3배 규모에 해당하는 민간 투자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 전체 R&D비에서 민간이 차지하는 투자비중이 76.2%, 정부 투자비중은 22.5%였다. 미국(32.5%, 2016), 독일(28.8%, 2016), 프랑스(38.3%, 2015), 영국(33.9%, 2015) 등 선진국들은 정부 투자비중이 우리나라보다 높다.
총량 기준으로도 미국(110.2조원, 2018), 일본(29.5조원, 2018) 등 주요 선진국과 아마존(33.5조원, 2018), 알파벳(24.9조원, 2018)등 다국적 첨단기술기업에 비해 낮다. 정부 R&D 예산 확대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더욱이 과학기술이 선도하는 혁신적 포용 국가 실현을 위해서는 정부 R&D 재정이 반드시 확대되어야 한다. 최근 몇 년간 정부 R&D 예산은 정부 총 예산보다 증가 속도가 상당히 더뎠던 것이 사실이며, 점점 확대되는 과학기술 수요에 대응할 만큼 충분치 않았다.
2017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은 4차 산업혁명 대응(71.1%), 기초연구(60.3%), 사회문제 해결(47.4%), 중소·벤처기업 지원(40.5%), 일자리 창출(37.1%) 등 경제·사회 주요 부문에서 과학기술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특히, 일본 수출규제, 미·중 무역갈등이 상징하는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 등 급속하게 악화된 대외 여건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경제체질을 개선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충하는 것이 시급하다. 정부 R&D투자야말로 한국 경제·사회의 성장판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다. 이제 경제·사회 발전과 일자리 창출뿐 아니라 삶의 질 제고, 사회문제 해결 및 국가안보 확보 등 국민소득 3만불 시대에 정부 R&D에 대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야 할 시점이다.
이를 위해 정부 R&D 예산의 외연 확대와 더불어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창출을 위한 전략이 수반돼야 한다. 정부는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선제적 투자와 국가경쟁력과 삶의 질을 고려한 균형적 투자를 통해 과학기술중심사회를 이끌어가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첫째, 미세먼지 등 복잡한 사회문제에 대응하는 다부처 융합예산 확대, 국민이 참여하는 생활문제 해결형 R&D 사업 강화 등 R&D 예산을 보다 수요자 중심으로 편성할 필요가 있다. 둘째, R&D 투자의 경제·사회적 파급효과를 높이기 위해 R&D에 그치지 않고 관련 규제·제도혁신, 인력양성·일자리 창출, 창업촉진 등 종합적인 정책 패키지로 지원해야 한다. 셋째, R&D 투자 성과를 낮추는 요인 중 하나인 부처별로 파편화된 정부 R&D 관리시스템을 통합적으로 개편해 일원화된 연구관리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국가R&D혁신을 위한 특별법'의 조속한 통과가 필수다.
R&D는 성공 가능성이 불확실하고 성공하더라도 경제·사회적 효과가 나오기 전 회임기간이 긴 속성이 있다. 이 때문에 시장의 마중물 역할을 하는 지속적인 투자가 요구되며, 선제적이고 혁신적인 성과가 나오기까지 충분한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 가성비가 주는 교훈도 중요하지만 노벨상 수상자들이 창의적 성과를 내기 위한 평균 연구 기간이 29.2년이라는 점 역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제 연구자 중심의 R&D 생태계를 기반으로 긴 호흡으로 투자함으로써 국민이 성과를 체감하는 '정부 R&D 예산 30조원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