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문화평론가
소녀시대와 함께 신한류 1세대 걸그룹을 대표했던 카라의 구하라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수사 중인 경찰은 타살 혐의점이 없으며, 구하라가 생전에 신변을 비관하는 짧은 메모를 남겼다고 밝혔다. 이 사건으로 한류스타들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 구하라는 지난 5월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었기 때문에 팬들은 그녀를 계속해서 걱정해왔다. 지난 달엔 걸그룹 FX 출신의 설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해 충격을 안겼다. 구하라의 사망원인은 추후 수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구하라가 생전에 고통을 겪었던 건 사실이어서 이 사건을 계기로 K팝 시스템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미국 버라이어티 지는 구하라 소식에 대해 '젊은 K팝 인재들이 잇달아 숨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우울증을 호소했고 화려한 겉모습 뒤에는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지독한 산업의 징후를 남겼다'라며 K팝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는 'K팝 스타들이 팬들에 의해 엄청난 중압감을 받고 있다. (한국은) 부유한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정신건강 지원이 부족하다'고 썼다.

국내 일각에선 아이돌을 트레이닝으로 키워내는 K팝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어려서부터 교육 등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오로지 연예인이 되기 위한 훈련만 했으니 정서적, 사회적 성장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덜컥 스타가 되어 엄청난 부담을 받으니 그것을 성숙하게 풀지 못하고 상처가 깊어진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런 스트레스를 관리해 줄 정신적 돌봄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맞는 말이다. 극도의 압박을 받는 연예인들을 정신적으로 돌봐줄 시스템은 분명히 필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극도의 압박' 자체를 줄이는 길이다. 극도의 압박은 연예인이 당연히 감당해야 할 무언가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연예인에게 가하는 압박엔 부당한 부분이 많다. 부당한 압박은 사회적 폭력이다. 그러므로 이건, 대중문화산업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문제다.

우리 사회의 사이버 공감능력 및 인간존엄성 의식 결여, 불합리성 등이 그런 문제를 만든다. 사이버상에서 타인을 공격할 때 그로 인해 상대방이 받을 고통에 대해 놀랍도록 둔감하다. 타인의 고통에 함께 아픔을 느끼는 건 인간의 본성이다. 맹자는 누구에게나 있는 이런 본성을 인(仁)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런데 일부 누리꾼들은 인터넷 세상에서 만큼은 그런 본성을 잊은 것처럼 행동한다. 상대방 심정을 난도질하는 언어를 태연히, 심심풀이 땅콩처럼 즐겨가며 발화한다.

인간존엄성 의식이 미비하기 때문에 피해를 당하는 사람을 봐도 문제의식을 못 느낀다. 인간존엄성 의식이 미비한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제대로 된 시민교육을 받지 못하고 오로지 타인을 밟고 올라서라는 경쟁교육만 받았기 때문이다. 루머와 집단공격으로 벼랑 끝에 몰린 이를 보면 '사람이 저런 대우를 받아선 안 된다'는 생각이 절로 우러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연예계 가십 정도로만 인식한다.

불합리성이란 근거 없이 사람을 공격하는 현상을 뜻한다. 구하라는 최근 1년여 동안 악플지옥 속에서 살았고 거의 한국 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으로까지 몰렸다. 그런데 그 악플에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 구하라의 전 남자친구가 구하라로부터 피해를 당했다는 주장을 하면서 악플이 시작됐다. 그런데 이건 전 남자친구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했고, 그 주장을 찬찬히 뜯어보면 앞뒤가 안 맞는 구석도 있었다. 이렇게 모호한 상황에선 판단을 유보하고 제기되는 근거들을 차분히 살피는 것이 합리적인 태도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합리성이 떨어지다보니 '판단유보'를 하지 못한다. 이슈가 불거지면 대뜸 심판부터 하려 든다. 근거도 없이 '마녀'로 낙인찍고 돌팔매질을 하는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 연예인이 대표적인 '인간 샌드백'으로 찍혀 수시로 인민재판대로 소환된다. 이슈가 터지자마자 즉시 조리돌림이 시작되고 나중에 억울함이 밝혀지면 '아님 말고'로 흐지부지된다. 그리고 또 다른 먹잇감을 찾아 인민재판대에 세운다. 그런 우리 사회풍조가 비극을 만드는 것이다. 연예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감능력, 인간존엄성 의식, 합리성이 결여된 사회는 누구에게나 언제든 폭력을 가할 수 있다.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연예계 시스템만이 아닌 한국사회 풍토를 바꿔야 할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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