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기 지음 / 보리출판사 펴냄
병자호란(1636년)은 인조가 머리를 땅에 대며 절을 아홉 번 한다는 삼궤구고두의 예로써 항복한 치욕적인 전쟁으로 기록됐다. 그러나 이 전화(戰禍)는 피할 수 있었다. 그 9년 전 청(淸)의 전신인 후금(後金)이 조선을 침입(정묘호란)해 국경무역과 척화배금(斥和排金, 후금과 화의를 반대하고 배척함) 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큰 약탈 없이 돌아갔는데, 조선이 약속을 안 지킨 것이다. 물론 후금인들이 국경에서 말썽을 일으키고 식량을 요구하는 등 후금도 약속을 안 지킨 것은 매일반이었다. 상황 관리만 잘 했다면 백성들이 극심한 고초를 겪지 않아도 될 것을 소중화에 함몰된 집권층의 오판으로 피해갈 수 없었다.
책은 그런 고루하고 앞뒤 꽉 막힌 사림(士林) 조정에서 책임감, 희생정신, 용기, 유연함을 지녔던 최명길이 전략적 사고로 청과 화친을 맺어 망국을 피한 과정을 추적한다. 헛된 명분보다는 나라와 백성을 먼저 생각한 외교관이었으며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최선의 대안을 찾던 경세가였다고 최명길을 평한다. 그의 반대편에 서서 척화를 외쳤던 김상헌과 대비를 통해 그의 유연한 사고와 전략적 구도잡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흥미진진하게 설명해간다.
최명길이 청과 강화문서를 쓸 때 김상헌은 그 강화문서를 찢고 통곡했다고 한다. 최명길은 찢긴 문서 조각을 주워 모으며 "조정에 이 문서를 찢어버리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또한 나 같은 자도 없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저자는 시국에 대한 각자 견해에 대해서는 잘잘못을 따지지 않는다. 다만 모름지기 국난의 위기에 처했을 때 지도자는 어떤 마음가짐과 각오가 필요한지 논하고 있다. 저자는 최명길과 관련된 수많은 사료와 논저, 중국과 일본 자료들까지 훑으며 방대한 자료들 속에서 한 인간의 이야기를 길어 냈다.최명길 집안에 내려오는 문헌들을 구해 읽고, 직접 최명길의 후손을 만나 선대의 이야기를 듣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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