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렬 서울예술대학교 영상학부 교수
이영렬 서울예술대학교 영상학부 교수
이영렬 서울예술대학교 영상학부 교수
한 지인의 부인이 스마트폰 반찬 앱을 자주 이용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동네 골목길 반찬가게 아줌마가 떠올랐다. 60대 나이에 들어선 지인의 부인은 전통시장에 갈 때면 간혹 반찬가게에 들러 겉절이며 나물무침 같은 것을 사오던 정도였다. 그런데, 친정 아버지 병원 간호를 다니며 바빠져 클릭 한 번에 집 문 앞으로 반찬 박스가 배달되는 앱을 처음 이용하게 되었다. 앱에 들어가 보았더니 보기만 해도 군침이 넘어가는 사진들과 광고문구들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눈길 붙잡는 멋진 사진들에 달린 '식감을 살리기 위해 한 번 더 튀긴' '입맛 돋구는 매콤한 양념' 같은 표현은 미각을 더 자극했다. 유명 셰프들이 개발한 레시피에 따라 수제로 요리한 것이라는데 할인을 이용하면 가격도 비싸지 않은 것 같았다. 더구나 전날 주문하면 냉장차량에 실려져 다음날 새벽 깨끗한 스티로폼과 아이스팩 박스에 담겨 문 앞에 놓여 있는 것이 놀라울 정도였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동네 반찬가게 아줌마의 친절한 표정이 떠올랐다. "온라인 반찬 앱이 더 확산되면 골목길 반찬가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반찬가게 아줌마는 살림만 하다가 대학생 한 명 고등학생 두 명인 세 자녀의 뒷바라지를 위해 반찬가게를 '창업'했다고 했다. 남편의 수입은 줄어들고 아이들에게 들어갈 돈은 많아져 고민하던 끝에 저렴한 가게자리를 구해 얼추 수리해서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하루 종일 앉을 틈도 없이 반찬을 만들어 진열해도 저녁시간이 다 되도록 개시도 못하는 날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날이 지나면서 동네의 새댁이며 맞벌이 주부, 노부부가 단골이 되고 그들이 잘 먹었다는 말을 들을 때 행복을 느낀다. 수입이 많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꾸려가니 앞으로 잘 될 것 같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디지털 '혁명' 시대에 온라인 반찬가게들이 더 확산되면 동네 반찬가게들은 어떻게 되나. 당장이야 큰 변화가 있을까마는 수년이 지나 스마트 폰 앱에 익숙한 젊은 층이 가정을 꾸린 후에도 계속 반찬 앱을 이용하고, 지인의 부인처럼 나이든 주부들도 반찬 앱의 편리함에 빠져 온라인으로 넘어가면 동네 반찬가게들은 어떻게 될까. 반찬가게 손님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반찬가게 아주머니의 희망은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동네 반찬가게는 가까운 곳에 사는 소비자에게는 편리함이 있고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누며 사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반찬 앱을 주도하는 식품 대기업들은 기존의 식품 사업과 공장에다 전문 인력의 활용, 전국 냉장 배달 체계 같은 인프라와 전국 판매에 따른 '규모의 경제'를 갖추고 있다. 그래서, 저염식에 아이 반찬, 유명 맛집 반찬 등 수백 가지의 반찬을 맞춤식으로 내 놓을 수 있고, 배송도 고객이 원하는 날짜, 시간에 맞춰 줄 수 있다. 골목 반찬가게와 비교하면 온라인 반찬가게는 상가 임대료도 내지 않는 장점이 있다. 더구나 온라인의 세계는 스타트업들이 전문 투자업체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아 '승자 독식'을 할 때까지 초저가 가격을 지르는 판이 아닌가. 새벽배송 시장을 개척한 한 스타트업 업체는 지난해 영업손실이 336억원으로 창업하던 해인 2015년의 6배로 늘었지만, 광고와 할인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에 기존의 대형 할인점·백화점·홈쇼핑 등 유통 대기업들이 뒤처지면 죽는다고 가세해 새벽 배송 전쟁을 벌이고 있다. 스마트폰에 익숙한 워킹맘과 1인 가구 등 '엄지 쇼핑'을 하는 소비자는 좋겠지만, 이렇게 수년이 흐른 후에 골목 상권과 세상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서울시가 1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 동안 서울에서 편의점 1647개가 늘어나는 동안 동네 슈퍼가 1169개 줄어들었다. 프랜차이즈 업체와 온라인 쇼핑 증가, 새벽 식료품 배송이 인기를 끌며 동네가게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이런 거센 온라인의 흐름에 골목길 반찬가게 아주머니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전통시장처럼 종사자가 많다거나 반찬가게 협회라도 있다면야 정치권이 나서 줄 터인데 그렇지가 않다.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한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법'이 있어 대기업들의 반찬 가게 진출은 제한될 수 있지만 이것도 온라인의 공습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골목길 반찬가게의 고객들이 점차 온라인으로 이동한다면 걱정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내년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앤드류 양이라는 후보가 4차 산업혁명의 기술발전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 문제를 제기해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는 미국 최대 온라인 소매상인 아마존 같은 IT 거인들의 자동화가 제조업의 일자리를 줄이는 주범이라고 지목하고 이들로부터 디지털 세금을 걷어 18세 이상 전 국민에게 월 1000 달러의 기본소득을 주어 일자리 상실로 인한 생계 걱정을 하지 않게 만들자고 제안했다. 우리 정치권에서도 현재 논란 중인 차량 호출 서비스 '타다' 뿐 아니라 앞으로 골목길 반찬 가게에 닥칠 문제에도 대응하여 반찬가게 아줌마의 미소가 이어지게 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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