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를 믿어 달라." 기획재정부 관계자가 지난 7월 경제정책 방향에서 올해 성장률 목표치를 2.4~2.5%로 제시하며 한 말이다.
그는 "민간에서 예측하는 성장률 2%대 미만은 과한 전망이라 생각한다"며 "그동안의 사례를 보면 정부가 제시한 성장률 전망이 맞았다"고 했다. 당시 대부분의 민간연구기관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대 초반으로 예상했다. 일부 기관은 2%대도 힘들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스코어만 놓고 보면 기재부의 완패다.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난 10월 20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성장률은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전망 수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당시 IMF·OECD는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2.0, 2.1%로 전망했다. 경제 수장이 성장률 하향 조정을 공식화한 것이다.
그런데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20년이 오기까지 아직 한 달이 조금 넘게 남았다. OECD는 지난 21일 우리나라 성장률을 2.0%로 직전 전망치에서 다시 0.1%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민간 연구기관은 한 발 더 나아가 1%대 성장을 기정 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정부는 부랴부랴 2% 달성은 가능할 것이라고 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연말까지 성장률을 끌어올릴 만한 이슈가 없어서다.
반면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글로벌 불확실성은 곳곳에 상존하고 있다. 해외 뿐만이 아니다. 우리 경제는 투자 위축과 내수 침체 등으로 저성장의 터널에 들어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성장률은 하향조정되는데 정부 부처 간 해석은 제각각이다. 홍 부총리는 지난 10월 성장률을 하향 조정한 배경으로 일본 수출규제를 원인으로 꼽았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설비투자 등 반도체 시장이 위축돼 성장률에 직접적인 영향이 미쳤다는 해석이었다.
그러나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 4개 업체는 지난 7월 초 일본의 수출 규제 발표 이후 이에 따른 생산 차질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최근 정부에 전달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지난 13일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일본 수출규제와 관련해선 "실제 생산에 차질이 오는 피해로 연결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부총리와 산업부 장관이 만나 '진실 게임'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뒷맛이 개운치 않지만 차라리 여기까진 이해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미래를 예상하는 전망치가 아닌 이미 기발표된 수치마저 왜곡된 점이다. 홍 부총리는 최근 SNS에 "정부가 일관성 있게 추진해온 소득주도성장, 포용성장의 효과가 지난 3분기에는 시현되는 조짐을 보였다면 이번 3분기엔 본격화될 수 있다"고 썼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3분기 가계동향조사(소득부문)' 결과치를 보고 평가한 글이다.
통계 결과는 이렇다. 3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87만6900원으로 1년 전보다 2.7% 증가했다. 1분위 가구의 명목소득은 137만4400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 대비 4.3% 늘었다. 1분위 소득 증가로 3분기 기준 5분위 배율은 2015년 이후 처음으로 개선됐다. 다시 말해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소득 불평등이 개선됐다는 것으로,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게 홍 부총리 글의 요지다.
하지만 여기엔 빠진 것이 있다. 이전소득 증가율이다. 1분위 소득이 늘어난 것은 일을 통해 소득을 얻은 근로소득 증가가 아닌, 정부가 지원하는 공적 이전소득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3분기 1분위 근로소득은 44만7679원으로 전년동기(47만8859원) 대비 3만원 넘게 줄었고 2017년 3분기(61만8446원)와 비교하면 17만원 가까이 줄었다. 반면 1분위 이전소득은 67만3720원으로 전년 같은기간(60만4714원)보다 7만원 가량 늘었고 2017년 3분기(50만4545원)와 비교하면 2년 만에 17만원 가까이 증가했다.
그렇다면 고소득층 근로소득은 어떨까. 올해 3분기 762만4296원으로 작년 동기(730만2259원) 대비 33만원 가량 올랐고 2017년 3분기 655만9470원과 비교하면 2년 만에 월평균 110만원 가까이 늘어났다. 근로소득만 놓고 보면 1분위 계층의 삶은 더 팍팍해졌고 소득 양극화는 더 심화됐음을 알 수 있다. 자화자찬하기엔 부끄러운 통계 결과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9일 '국민이 묻는다-2019년 국민과의 대화'에 생방송으로 출연했다. 문 대통령은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서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국민패널 질문에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고 장담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역대 정부가 잡지 못한 이유는 (부동산을) 경기부양 수단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라며 "설령 성장률에 어려움을 겪더라도 부동산을 경기부양 수단으로 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가 있다"고 했다. 이를 또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