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박정일 기자] 일본이 한국에 대한 3개 핵심소재 수출 규제 조치를 단행한 이후 약 5개월간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의 생산 차질이 사실상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의 '조건부 연기' 결정 이후 이어질 양국 통상당국 간 대화에서 한국 측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만 일본이 여전히 3개 품목에 대한 개별 심사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업계는 양국 간의 대화 결과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24일 산업통상자원부와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 4개 업체는 지난 7월초 일본의 수출 규제 발표 이후 이에 따른 생산 차질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최근 정부에 전달했다.
애초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등 3개 품목의 대일 의존도가 워낙 높아 수출 규제가 2~3개월 이상 지속할 경우 생산라인 전면 중단 등 '치명상'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가 컸으나, 결과적으로는 심리적 불안감 외엔 별 다른 영향이 없었다는 결론이다.
이는 각 업체가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통해 기존에 확보하고 있던 재고 물량의 생산라인 투입을 효율화하는 한편 이들 품목의 수입 채널을 유럽 등으로 다변화하고 국산화 노력도 병행한 게 주효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한국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절차에 돌입하면서 일본이 '부적절한 수출통제'라는 국제사회의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분적으로나마 이들 품목에 대한 수출 허가를 잇따라 내준 것도 '숨통'을 틔운 요인이 됐다. 실제로 일본의 해당 품목 대 한국 수출규모는 예년과 비슷하거나 소폭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SK, LG 등 복수의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디스플레이 4개 대표 업체 가운데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해 당초 예정된 생산물량을 채우지 못한 곳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안다"며 "영향이 없었다기보다는 피해가 없도록 치밀하게 대응한 덕분"이라며 "올 3분기와 4분기 실적에 일본 수출규제에 따른 '마이너스 요인'은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제조업 혁신을 위한 핵심 과제 가운데 하나로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자립화'를 추진하던 중에 일본의 이번 수출 규제가 오히려 '마중물'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해말 산업부가 '2019년 새해 업무 보고'를 통해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올해 핵심 정책 과제로 제시했음에도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최근 들어 범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정책 추진에 힘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 수출 규제를 계기로 '소재·부품·장비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이 21일 국회 상임위를 통과하기도 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일본 정부가 3개 품목을 개별적으로 심사하고, 백색국가(수출절차 우대국)에서 제외한 조치도 유지한다는 방침을 밝힌 데 대해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생산 차질이 없다고 해서 앞으로 계속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며 "한일 국장급 정책대화를 통해 수출 규제와 관련한 타결점을 찾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