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을 저지하려고 '의원 총사퇴' 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리고 있다.
한국당을 뺀 여야 4당이 합의한 선거제도 개혁안과 사법개혁안의 국회 본회의 부의 시점이 점차 다가오자 한국당과의 합의 없이 법안이 통과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깔린 고육지책 차원의 선택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의원 총사퇴' 카드가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 비관론이 크고, 정치적 보여주기에 그친다면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있어 쉽사리 결정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당 재선의원 모임은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긴급 조찬간담회를 열고 패스트트랙 저지 방안과 보수통합 관련 의견 등을 나눴다.
박덕흠 의원은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재선 의원들은) 패스트트랙 법안이 통과될 의원직 총사퇴를 당론으로 할 것을 지도부에 건의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김명연 수석대변인은 "재선 의원 모임은 당의 공식 기구가 아니기 때문에 구속력은 없지만, 의원들이 뜻을 모은 만큼 지도부에 의견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국당이 패스트트랙 저지에 '의원직 총사퇴' 카드로 대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사법개혁안이 지난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기한이 끝나고 본회의 부의가 가능해지자 한국당은 의원직 총사퇴를 해서라도 패스트트랙 본회의 직행을 막아야 한다는 기류가 강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여야4당이 사법개혁안을 본회의에 올려 처리하려고 할 경우 장외투쟁을 비롯한 강력한 저지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만 패스트트랙 지정 당시 물리적인 충돌로 검찰 수사까지 받게 된 상황에서 더 이상의 물리력을 행사하기는 어려운 만큼 차선책으로 꺼낸 것이 의원직 총사퇴다. 국회의원이 의원직 사퇴의사를 밝히면 본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니 사퇴하지 않고도 충분히 정치적 압박용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 나온 구상이다. 하지만 총사퇴 카드는 실현되지 않았다. 당시에는 당내에서도 총사퇴가 실질적인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 역시 "국회 비회기 중에는 국회의장이 서명을 해야 의원직 사퇴가 되고, 회기 중에는 재적의원 2분의 1 찬성이 있어야 사퇴가 되기 때문에 사퇴가 이뤄지기 어렵다"면서 "자칫 사퇴서를 냈다는 이유로 국회에 못 들어오게 한 뒤 (여야 4당이) 멋대로 다 패스트트랙 법안을 처리하면 더 망한다"고 반대했다. 이후 문희상 국회의장이 사법개혁안을 다음 달 3일 본회의에 부의하기로 하면서 30여일 시간적 여유가 생기자 총사퇴 카드는 잠잠해졌다.
재선의원들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총사퇴 카드를 다시 공론화한 것은 패스트트랙 협상이 좀처럼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패스트트랙 법안에서 한국당 의견을 반영한 수정안을 본회의에 올릴 가능성이 줄어들수록 한국당 입지가 좁아지니 배수진을 친 것으로 읽힌다.
지도부의 입장도 변화가 감지된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재선 의원들이 정말 자유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없다는 간절함을 표현한 거라 생각한다"며 "저도 앞장서서 이 자유민주주의를 망가뜨리는 삼권분립 붕괴시도를 함께 막아내도록 하겠다"고 동조했다. 나 원내대표 역시 "할 수 있는 모든 카드를 검토해야 한다고 본다"면서 "패스트트랙은 여러 번 말한 것처럼 불법사보임과 불법 의결, 이제는 불법 부의마저 하려고 한다. 이 불법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게 여러 가지 가능한 모든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물론 총사퇴 비관론도 여전하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이날 자신의 SNS에 "정기국회가 끝나면 총선까지 국회의원들이 할 일이 무엇이 있는가"라며 "참 어이없는 웰빙 투쟁"이라고 비판했다. 김미경기자 the13ook@dt.co.kr
박덕흠 한국당 의원(왼쪽) 등 한국당 재선 의원들이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패스트트랙 저지 방안 등 의견을 교환하는 긴급 간담회를 하기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