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삼성전자가 주식시장에서 '거래대금 톱' 자리를 바이오벤처에 내줬다. 최고 거래대금을 찍은 업체는 바로 '임상 성공' 주장이 발표된 뒤 주가가 고공행진 중이었던 에이치엘비였다. 임상 성공 여부는 바이오기업의 주가를 바닥으로 끌어내릴 수도, 천정부지로 치솟게 할 수 있는 핵심 변수다. 특히 공인된 기관의 공식 통보가 없어도, '임상에 성공했다'는 회사 측의 주장만으로도 주가 흐름을 180도 반전시키는 사례가 종종 목격된다. 임상 3상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다는 소식이 나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를 뒤집는 자체 임상 결과를 내놓으며 분위기를 반전한 에이치엘비, 헬릭스미스 등이 대표적이다.
에이치엘비는 최근 자회사인 LSKBiopharma(현 엘리바)가 개발 중인 표적항암제 '리보세라닙'이 임상 3상에 성공한 것처럼 발표했다. 자체 분석 결과 리보세라닙의 PFS(무진행생존기간), ORR(객관적 반응률), DCR(질병 통제율) 등이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했다는 게 골자다. 리보세라닙의 경우, 지난 6월 임상시험에서 1차 평가지표인 OS(전체생존기간)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결론이 내려진 바 있다.
이 회사는 미국 FDA(식품의약국)와 신약허가신청을 위한 사전미팅을 완료했다고도 발표했다. 하지만 이를 보는 업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리보세라닙 임상 3상이 1차 평가변수를 충족시키지 못해 FDA의 최종 허가가 나올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발표가 너무 조급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투자자들의 기대감은 높아졌고 이 회사의 주가는 석달 전보다 폭등해 코스닥 시가총액이 6000억원 가까이 늘었다. 주가가 이틀간 40% 이상 오르면서 한국거래소로부터 투자경고종목으로 지정돼 지난달 28일 하루 거래가 정지되기도 했다. 에이치엘비는 시총은 6조7000억원대까지 올라 코스닥 시총 2위를 기록 중이다.
헬릭스미스의 주가는 지난 9월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 '엔젠시스'의 임상 3-1A상 결론 도출 실패 사실이 발표되자마자 급락했다. 18만원대였던 주가의 3분의 2가 일주일만에 날라갔다. 하지만 곧이어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6만원대로 내려앉았던 주가는 임상 3-1B상이 성공했다는 회사 측의 자체 결과 분석 발표가 나자 가격제한폭까지 솟구쳤다.
임상 3상에 대한 자체 중간발표가 주가흐름을 반전하는 '특효약'으로 작용하는 이러한 현상은 위험하다. 기업으로 하여금, 임상에 실패하고도 실패가 아니라며 스스로를 속이려는 유혹에 빠지게 하고, 결국에는 부족한 글로벌 임상 3상 전문인력과 임상디자인 수준 등 근본적인 문제를 개선할 기회를 날려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개별 기업들의 신중하지 못한 행태가 산업 전체에 대한 신뢰도를 끌어내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가 지난달 이례적으로 '바이오·제약주 관련 투자자 유의사항'을 작성해 보도자료로 배포할 정도로, 바이오 종목의 주가가 요동치는 현상은 비정상적인 흐름으로 여겨지고 있다. 비정상이 일상화되는 종목으로 바이오의 이미지가 굳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또 하나의 바이오기업이 임상실패 소식을 전했다. 지난달 24일 강스템바이오텍은 아토피 피부염 줄기세포 치료제 '퓨어스템AD'의 임상 3상 결과,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지 못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임상 3상에서 효과를 입증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이 사실을 공표하는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강스템바이오텍의 한 주주는 경영진을 향해 "다른 기업들은 임상에 성공했다고 자체 발표를 하고 나서는데 왜 굳이 임상에 실패했다고 말하느냐"고 질타했다. 투자자로서의 답답한 심정을 토로한 이 장면은, 기업이 '임상 실패'라는 팩트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유혹에 얼마나 쉽게 노출돼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임상 실패'라는 오점을 남기더라도, 혹은 '임상 성공'이라는 열매를 더디게 맺더라도 괜찮다. 임상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사실과 다르게 포장해 주주들의 성화를 당장 '면피'하는 것보다는 '신약 허가'라는 목적지까지 당당하게 도달하는 것이 개별 기업에 있어서나, 산업 전반에 있어서 장기적으로는 득이다. 그래야 뒤탈 없는 신약이 나올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