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부품·장비 기업 생태계, 수평적 협업 구조로 만들어야 경쟁력 갖출 수 있어 정부 R&D 대부분 中企서 맡지만 대기업 연계 부족… 상용화·판로개척 이어져야 기술·인력 부족한 상태 IT시스템만 지원해선 소용없어, 전문가 지원·교육도 필요 정부의 테스트베드 구축은 기대 커… 대기업과 함께 기술·제품 개발 등 연계돼야
사진=이슬기기자 9904sul@
'기술전쟁 시대, 대·중기 협업혁신 전략' 디지털타임스·기술경영경제학회 공동좌담회
일본 수출규제, 미·중 무역갈등을 비롯한 기술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세계가 기술전쟁 시대를 맞았다. 글로벌에서 경쟁력 있는 기술과 부품을 가져와 빠르게 공급하는 스피드가 강점이었던 국내 기업들의 전략 선회가 시급하다.
단일 기업이 혼자 대응하기 힘든 복잡한 기술변화 시대에 국내 수요 대기업과 전문 중소기업의 협업혁신 생태계를 새로 만들고, 정부R&D가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서울 중구 디지털타임스 본사 회의실에서 진행된 좌담회에서 전문가들은 "변화에 대응해 중소기업 지원과 정부 R&D 패러다임 변화가 시급하다"면서 "차세대 산업기술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팀플레이를 강화하고, 중소기업의 기술혁신과 스마트화를 위한 인력·기술·인프라 지원을 체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참석자>
김혜동 선익시스템 CTO·수석부사장
노민선 중기연구원 연구위원
박인하 비아이티범우연구소 사장
손병호 KISTEP 부원장
이삼열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이병헌 기술경영경제학회 회장·광운대 교수
홍재범 부경대 교수·창업학회 부회장
사회=안경애 ICT과학부 과학바이오팀장
김혜동 선익시스템 CTO
이병헌 기술경영경제학회장
사회=소재·부품·장비를 비롯한 산업기술 국산화와 경쟁력 향상이 국가적 과제로 떠올랐다. 각 현장에서 체감하는 분위기가 궁금하다.
-김혜동=중소기업이 기술과 제품 완성도를 높이고 글로벌화해야 시장 경쟁력을 가지는데 정책이 급박하게 추진되는 감이 있다. 포인트는 이게 단초가 돼서 산업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에서 쓰이는 건데, 그러려면 대기업이 적극 참여해야 한다. 대기업은 성능과 안정성을 갖춘 제품을 빨리 양산화해서 시장경쟁력을 갖는 게 목표다. 설비가 고장이 나선 안 되고 유지관리도 쉬워야 한다. 그러려면 중소기업의 기술·제품 경쟁력이 높아져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대기업이 같이 개발해줘야 한다. 이를 정부 정책과 연계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들은 그동안 테스트베드가 없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테스트베드 구축 시도는 맞는 방향이라고 판단된다. 그 환경 안에서 R&D·제품 개발과 연계하면 좋겠다. 또 프로젝트를 분산해 추진하는 게 아니라 국가적으로 꼭 키워야 할 것을 찾아서 집중 투자하고, 그 성과물이 테스트베드에 올라가 운영되도록 하면서 차세대 기술을 준비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몇 개 안 되는 대기업 중심으로 산업이 수직계열화되다 보니 서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현재 구조는 문제다. 시장은 작은데 어느 대기업 줄에 서느냐에 따라 기술 장벽이 만들어지고 전파가 힘들다. 그 구조를 수평화해서 국가에서 평준화하는 기반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이 기술 차별화에 성공하면 자동으로 수직계열화를 깰 수 있다. 기술이 우수하면 대기업이 안 살 수 없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아이디어에 따라 상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선행적 로드맵을 세우고 기술과 제품을 개발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수준까지 가도록 지원해야 한다.
-손병호=일본 수출규제에 따른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위기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으려는 분위기 확산이 필요하다. 또 소재·부품·장비 분야 기업의 생태계를 혁신해 수평적 협업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 각국 기업들은 최종 완제품과 소재·부품을 동시에 개발해 상용화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미래형 자동차 분야만 해도 수요 산업과 소재·부품산업 간의 쌍방향적 기술 개발이 필수다.
이에 대응해 기존처럼 중소기업들을 단위 부품·소재 중심으로 단기간·소규모 지원하는 방식과 달리, 모듈단위 부품과 원천소재 중심으로 중장기, 중·대규모로 지원해 효과를 높여야 한다. 특히, 미래 전략 소재·부품분야는 대기업과 소재·부품업체가 공동 컨소시엄을 구성해 기술을 중장기로 개발하는 '플래그십 프로젝트'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수요기업과 소재·부품업체 공동으로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수요기업의 구매확약 등을 전제로 이뤄져야 한다. 정부가 75% 내외 출연하고 기업이 25% 내외를 내는 방식이다.
-이병헌=미국이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추진한 협업 전략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처음에 세마텍이란 반도체 제조업체 중심 컨소시엄을 만들어서 수평적 협업을 통해 차세대 기술을 공동으로 개발하려 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협력이 잘 되지 않았다. 참여 기업들이 가진 기술은 안 내놓고 경쟁사 기술을 가져 가려고만 했기 때문이다. 이 시도는 실패로 결론이 났다.
이후 세마텍 2기를 추진하면서 추진체계를 바꿔 반도체 제조뿐만 아니라 반도체 제조장비 업체까지 참여시켰다. 그러면서 반도체 업체와 장비 업체를 묶은 여러 협업 팀을 만들어서 팀 단위의 과제를 지원하고, 팀 간 지식을 공유하는 구조로 만들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우리도 소재·부품·장비 분야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수요기업과 소재·부품·장비 기업이 모두 참여하는 팀플레이가 필요하다. 또 R&D의 목표는 차세대 기술로 잡아야 한다. 기존 제품을 대체하는 정도의 R&D는 의미가 없고 기업들의 참여 의지가 낮을 수 있다.
-박인하=실제로 산업현장의 중소기업들은 테스트베드 확보 자체가 매우 힘들다. 우리나라 산업화의 역사를 보면 과거에는 대부분 기업이 도입한 기술을 기반으로 성장해 왔다. 그런 식으로 앞서가는 곳을 쫓아왔는데 이제 게임이 달라졌다.
대기업과 정부는 정보와 자금이 있지만 중소기업은 인력도, 실력도, 자금도 없다. 그런데 미래 성장을 위한 R&D를 중소기업에 다 미뤄놓고 있다. 현실적으로 중소기업의 R&D 활동에는 한계가 있다. 리스크를 감내하며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은 힘들다. 대기업도 수십억원을 투자한 R&D가 실패하면 담당 임원은 살아남기 힘든데, 중소기업은 회사가 견디지 못한다.
미래 전략산업에 대해 정부가 대형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성과단계별로 기업의 사업화와 연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지식재산(IP) 확보, 시제품 생산, 초기 시장 진입 등으로 단계를 구분해 기업이 시장에서 성과를 내도록 제도적 돌파구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 사업에서 나온 기술을 기업에 이전하고 끝내는 식이 아니라 사업화 단계에 실질적 지원을 더 해주고 성과를 낼 때까지 키워주는 전략이 필요하다. 과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했던 시기의 강력한 의지가 중소기업 육성에 발휘돼야 한다.
박인하 비아이티범우연구소 사장
손병호 KISTEP 부원장
◇사회=테스트베트가 실질적 효과로 이어지려면 어떤 점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김혜동=생산성과 수율 향상 중심으로 돌아가는 대기업이 양산설비를 외부에 개방하는 것은 극히 힘들다. 내부 R&D 조직에서 자사 양산설비를 이용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외부에서 이용하는 것은 더 힘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부가 구축하는 별도 테스트베드가 필요하다. 물론 정부와 대기업이 협약을 맺고 일정 부분을 외부에 개방하는 것으로 약속을 하면 가능할 것이다.
-박인하=업종과 기업마다 상황이 다르다. 우리는 P사가 가장 큰 고객인데, 상당히 많이 오픈해 주는 편이다. 회사가 올해로 설립 46년을 맞았는데, 창업 계기도 P사가 처음 강판 제조를 시작하면서 찾아와서 제조과정에 필요한 압연유가 필요하다고 해서였다. P사는 비교적 개방적이고 경영지도와 협업 노력도 많이 한다. 임원들이 수시로 방문해서 프로젝트에 참여해 같이 일하고 구매조건부 과제도 적극적으로 진행한다.
표준화 노력도 활발하게 한다. 예를 들어 가공유만 해도 공급자와 수요자 측의 품질 기준이 다를 수 있는 만큼 서로 눈높이를 맞추는 작업이 필요한데, P사의 경우 유체 점도 테스트를 위한 시료 테스트 과정이 완전히 표준화돼 있다. 테스트베드가 효율적으로 작동하려면 표준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표준화, 테스트베드 구축, 컨소시엄 구성을 통한 미래 기술 개발까지 함께 한다면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손병호=정부는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가 지정연구실 도입과 내셔널 퍼실리티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내셔널 퍼실리티는 중소기업이 개발한 소재나 부품을 시험평가하는 인프라를 여러 출연연과 국가단지에 구축하는 것이다.
수요 대기업의 생산라인을 활용해 상용화 단계의 중소기업 소재·부품·장비 시험·평가와, 성능 개선에 필요한 R&D 자금을 지원하는 사업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이 소재·부품 개발 후 대기업 시설에서 평가·시험을 할 수 있도록 대기업에 상용화 연구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소재·부품·장비 분야 대·중소기업간 협력에서 한전, 한수원 등 대형 공기업의 역할 강화도 필요하다.
이삼열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홍재범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
사회=보호무역·기술전쟁 시대 국가R&D 전략을 어디에 초점을 두고 추진해야 한다고 보는가.
-이삼열=현재 이슈가 촉발된 게 일본이 글로벌 공급체인을 갑자기 끊으면서 생긴건데, 글로벌 체인이 복구되면 우리가 하는 작업이 여전히 유효할 지 의심이 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해야 한다는 조급증보다는 영역별로 다각적이고 현실적인 대응을 해나가는 게 필요하다. 또 하나 생각할 점은 국내 중소기업의 기술 경쟁력이 높아지면 해외 대기업과의 연결방안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대기업만 보고 기술과 상품을 개발하기엔 시장이 너무 좁다. 해외 대기업과의 협업과 판로개척에 고민도 해야 한다.
-이병헌=일본에서 안 주니 우리가 만든다는 식의 정책은 안 된다. 일본의 수출규제에서 이슈가 촉발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미 글로벌 공급체계가 안정화된 시장을 대체하기 위한 국산화나 기술 개발은 의미가 없다. 해 봐야 글로벌 시장에 나가기도 힘들고, 공급이 정상화되면 경쟁력을 잃는다. 핵심은 차세대 기술 개발에 장기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시장과 장비를 개발해서 국내에서 상품화하고 경쟁력을 확보하면 자연스럽게 글로벌화도 쉬워진다.
이 과정에서 대·중소기업간 협력체계를 질적으로 고도화하지 않으면 일시적으로 부품·소재 의존도를 줄이는 임기응변에 성공하더라도 장기적인 산업 경쟁력 확보는 힘들 게 뻔하다. 정부도 R&D와 중소기업 지원 규모만 늘릴 게 아니라 지원방식을 혁신해야 한다.
-손병호=정부 R&D의 전면적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 중소기업이 기술을 개발해도 판로가 없으면 소용이 없는 만큼 R&D 과제를 통해 대·중소기업간 협업을 유도해야 한다. 작년 정부R&D 과제 중 산학연 협동연구 비중은 과제수로는 22.6%, 금액으로는 34.8% 수준이었다. 그런데 산학연 협동과제 중 대·중소기업 공동 과제가 64건으로 4.1%에 그쳤다. 그동안 기업R&D 과제는 대부분 중소기업에 주면서, 대기업과 잘 연계가 안 된 것이다. 이런 구조를 바꿔야 한다.
-홍재범=중소기업의 정부R&D 과제가 단독 수행 비중이 높은 편이다. 개방형 혁신의 중요성이 강조되지만 폐쇄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중기부가 지난 8월 '중소기업 지원체계 혁신방안'에서 내년 산학연 협력 R&D 비중을 기존 37%에서 50%로 확대한다고 한 만큼 변화가 이뤄지길 바란다. 공공연구소 등을 통한 기술파트너 매칭, 원천기술 이전·상용화 등 중기부 혁신방안이 협력형 R&D 확대의 시발점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국가 R&D와 기업 지원, 협업 R&D 구조 전반에 대한 시각과 방식을 바꾸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공동연구를 지원했지만 실질적 협업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 했다. 국내에서 공동연구의 경우 모든 책임과 성과가 주관기업에 주어지는 구조다. 또 협업으로 뭘 이루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주관기업이 연구비의 일정 비율을 기술료로 내면 성공으로 판정받고 끝난다. 그러다 보니 실질적 협업 성과가 적었다. 대기업 구매조건부 R&D 사업의 경우도 개발한 제품 납품처가 해당 대기업으로 국한되다 보니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어려움이 많다.
실질적인 협업은 비슷한 이들이 아니라 역할도 사이즈도 다른 주체들이 해야 한다. 그들이 명확한 투입과 분배 원칙 하에 엄밀한 계약관계 하에 협업을 해야 성과로 이어진다. 비즈니스 사이클과 맞지 않는 출연금 방식 R&D 지원과 다른 투자방식 지원 도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체 R&D 예산규모에 비해 턱없이 적은 기술사업화 예산 확대도 시급하다.
-이병헌=정부R&D 과제 중 산학협력이 대부분 중소기업과 대학 또는 중소기업 간에 이뤄진 이유는 정책적으로 대기업의 R&D를 지원할 필요가 없다며 배제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협력해서 만들 게 없는 사람들끼리 만나 형식적 협력을 하는 데 그쳤다. 결국 대·중소기업이 혁신기술 개발을 위한 협력 생태계를 만드는 데 정부 R&D 사업이 기여하지 못했다. 단순히 정부 R&D 투자 확대만으론 안 된다. 추진체계를 바꿔야 한다.
-김혜동=대기업에 있다가 중소기업으로 오니 환경이 많이 다르다. 인력부터 환경, 자원이 모두 부족하다. 장비 하나를 개발하는 데도 엄청난 비용이 든다. 그러다 보니 장비업체는 수요기업과의 협약이 돼야 투자가 가능하다. 그런데 국책과제의 도움을 받아 전체 장비가 아니더라도 핵심 모듈만 개발하면 중요한 전환점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런 지원이 이뤄지면 중소기업의 체감 효과가 매우 클 것이다.
대기업은 이미 패스트 팔로워에서 퍼스트 무버로 바뀌었고 자체 R&D 역량도 확보했다. 정부가 집중할 분야는 중소기업의 체질개선이라고 본다. 지금은 영세 기업이 너무 많다. 로드맵에 따라 이들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변화해 갈 수 있도록, 기반을 갖춰준다는 식의 투자를 해야 한다.
사회=정부R&D 정책과 사업에서 보완돼야 할 점이 있다면.
-홍재범=이슈가 업종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만큼 산업별 상황과 수요에 맞는 세밀한 정책이 필요하다. 현대자동차는 국산 부품을 의도적으로 많이 채택해 쓴다. 전자산업은 기술 변화 속도가 빠른 데다, 화학 등 기초소재를 많이 쓰는 특성이 있다. 같이 뛰면 우리 기업도 글로벌화될 수 있다. 선박의 경우 회사의 국적보다 중요한 게 선주협회의 인증이다. 산업부의 각 산업 담당부서가 산업별 정책을 기획해서 선별적으로 지원해야 할 것이다. 또 수출을 위해 국제인증이 필요한 시장이 많은 많은데, 그런 영역은 중소기업 대상 인증 지원제도와 설비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
-이삼열=산업분야마다 문제와 해법이 다를 수밖에 없다. 대·중소기업의 협업 R&D 지원에서 어느 부분이 필요하고 아닌 부분은 뭔지 구분하는 작업도 필요해 보인다.
-손병호=과기정통부가 100개 이상 품목을 정해 전략을 세우고 있는데 품목별로 다르다. 시급한 것은 정부R&D가 대·중소기업 협업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기술을 개발하는데 기업당 2~3년간 연 2억~3억원씩 줘서는 부족하다. 진정한 개념의 미국식 중소기업기술혁신(SBIR)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한국형 SBIR을 도입했지만 개선 여지가 있다. 미국은 단계별 펀딩, 실효성 있는 규모의 자금 지원, 사업화 연계를 통해 사업의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단계별로 초기에는 1억~2억원을 주다가 단계가 올라가면 5억~10억원으로 늘리고, 구매부터 상용화까지 연결해준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중소기업 지원 자금이 임계규모가 안 되다 보니 실질적인 지원효과가 부족하다. 중소기업 지원도 단계별로 규모를 갖춰서 해야 효과로 이어진다.
공공구매 조달의 역할 강화, 대기업 인센티브 등 중소기업의 혁신제품 판로 지원, 대·중·소기업 협력과제에 대한 인센티브 강화, 민간투자와 연계한 중소·벤처기업 과제 선정, 자금지원 방식 확대 등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홍재범=중기부 중소기업 R&D 지원체계 혁신방안에 2~3년 과제는 2억~10억원 내외, 3년 이상, 최대 20억원 내외로 지원 기간과 규모를 차등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도전적 기술개발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이와 별도로 협업 R&D에 대한 평가와 지원 시스템 체계화가 필요하다. 일본의 경우 중소기업들이 모여서 새 제품을 개발하면 R&D부터 특허, 투자, 여신, 시장개척까지 지원하는 사업이 있다. 우리나라는 중소기업 지원사업 간 단절이 심하다 보니 일관된 지원이 이뤄지지 못 하고 있다. R&D에서 사업화로 연계하는 시스템도 부족하다.
-노민선=중소기업들은 R&D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고 토로한다. 그러다 보니 R&D 관련 의사결정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최근 중소기업 R&D 지원이 늘어나면서 효율성에 대한 지적이 많이 나오는데, 효율성 못지 않게 전략성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본다. 소재·부품·장비를 비롯해 전체 산업에 대해 정부의 R&D 지원 지속 가능성에 대해 시장에 명확한 시그널을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다만 도덕적 해이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기업 지원 시 출연과 융자를 혼합하거나, 출연과 투자를 혼합하는 식의 시도는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손병호=늘어난 중소기업 R&D 예산이 성과로 이어지려면 민간의 투자와 연계한 R&D 지원이 효과적이다. 시장에서도 높이 평가받는 기업을 제대로 밀어주는 게 필요하다. 출연금을 지원할 때 민간 벤처캐피탈이나 투자업체가 투자를 결정한 과제에 대해 출연금을 플러스 알파로 주는 식이다. 투자와 출연을 믹스하는 방식인데, 투자가치가 있는 과제에 출연금을 넣는다면 정부 출연금 투입의 정당성도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사회=중소기업의 기술혁신에 필요한 인력 확보도 중요한 과제다.
-노민선=중소기업 R&D가 활성화되려면 이공계 석·박사급 고급 인력이 중소기업에 많이 유입되고 장기 재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연구요원제도의 안정적·효율적 운영이 필요하다.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한 중소기업 상당수가 이 제도를 적극 이용하고 있다. 이제는 국방의 개념을 안보에서 경제로 확장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에 대한 전문연구요원 배정 규모를 높이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 이들 인력이 복무기간 만료 후에도 계속 근무하면서 핵심 인력으로 성장하도록 정책적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고졸이나 학사급 인력이 회사와 같이 성장하도록 관련 지원 확대도 요구된다. 또 중소기업 인력 지원이 사업주 중심에서 근로자 중심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에 일정 기간 이상 재직한 근로자가 회사의 동의를 얻어 대학원에 진학할 경우 등록금을 지원하는 제도도 검토할 만하다. 교육부의 중소기업 취업연계 장학금 '희망사다리'의 지원대상을 현행 전문학사·학사에서 대학원 과정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제안한다.
-김혜동=중소기업의 인력난은 심각하다. 특히 대기업과의 연봉격차가 크다 보니 젊은 층의 이직이 잦다. 벤처 붐이 시들하다 보니 지금은 고생해도 회사에서 더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이 별로 안 보여서 더 그런 것 같다. 중소기업이 대박을 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더 많은 성공사례가 나와야 할 것 같다.
-손병호=중소기업의 자체 인력이 부족해도, 정부R&D를 통해 인력을 보유한 주체들과의 협업을 지원하는 필요하다. 중소기업이 혼자 R&D를 하는 게 힘드니 협업, 개방형 R&D 과제를 통해 엮어주는 게 효과적이다. 개방형 혁신 지원유형을 다양화하는 노력도 해야 한다.
사회=제조업의 디지털화도 중요한 숙제인데 효과적인 대응방안을 제시한다면.
-김혜동=산업현장에서는 디지털화와 스마트화도 중요한 과제다. 스마트팩토리와 IoT, SW 활용능력이 경쟁력을 좌우한다. 여기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가 극명하게 벌어진다.
선익시스템이 제조하는 증착기의 경우 진공환경 안에서 여러 설비가 연결돼 작동하다 보니 한번 멈추면 큰 문제가 된다. 자가진단이 가능할 정도로 설비가 스마트화돼서 운영 중 갑자기 중단되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SW 인력이 필요한데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수많은 데이터가 다양한 설비에서 생산되는데 이들 설비가 다 연결되고 스마트화되려면 표준부터 만들어져야 한다. 표준화된 틀 안에서 기기들이 연결돼 통신이 이뤄지고 빅데이터가 모이면 AI를 적용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 제조 '레시피'를 사람 손 필요 없이 만들 수 있고 설비 진단과 변화도 스스로 체크하면 훨씬 스피드 있는 변화를 할 수 있다. 그런 표준화와 인프라, 인력 부분을 정부가 풀어줘야 한다. 전문기관 등에서 기술을 배우려고 해도 기본 인력이 부족하다. AI로 가려면 더 심각하다. 대기업도 데이터·AI 인력을 못 구한다는 데 중소기업은 말할 것도 없다. 관련 기술·인력 등을 도움받을 수 있는 지원창구가 만들어져서 실질적 도움을 줬으면 한다.
-박인하=중견·중소기업들은 IT시스템은 물론, 업무 프로세스, 표준화 수준도 떨어지는 게 현실이다. 우리 그룹은 2년에 걸쳐 업무 프로세스 재설계와 표준화를 하고 있는데 매우 힘든 과정이다. 이후 연말에 IT시스템을 도입하려 한다. 기존에는 업무체계가 잘 안 갖춰져 있다 보니 IT시스템이 일부 있어도 의사결정지원시스템 등 경영에 필요한 실질적 인프라가 부족했다. 결국 내부 역량 한계를 스스로 극복하려는 의지가 중요해 보인다. 본격적으로 시스템과 SW를 도입하면 관련 인력부족 문제도 드러날 텐데 해법이 필요한 상황이다.
-손병호=중기부 스마트팩토리 사업이 과거 중소기업 ERP 도입 지원사업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당시 관리인력 부족으로 도입 후 활용이 제대로 안 됐다. 데이터를 다루고 시스템을 분석할 SW 인력이 없는 상태에서 시스템만 갖춰선 소용이 없다. 기업이 자생적으로 시스템을 운영하도록 인력 보급이 필요하다. 스마트화가 고용감소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제조현장 종사자들의 거부감이 있는데, 기존 인력에 대한 재교육 지원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노민선=스마트팩토리가 중소기업 인력난 완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직자들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열악한 작업환경이다. 직업계 고등학생들을 인터뷰해 보면 화장실부터 얘기한다. R&D 환경의 애로도 호소한다. 스마트공장이 그런 환경의 미스매치를 완화할 가능성이 있다. 스마트공장 인프라가 고도화될수록 일하기 좋은 직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스마트팩토리 초기 단계부터 가는 기업이 많지만 중장기적으로 중소기업이 경쟁력 있는 인력을 확보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병헌=대·중소기업 협력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중소기업의 역량 고도화가 필수다. 지금은 대기업이 협력하고 싶어도 중소기업이 못 쫓아가는 부분이 있다. 인력과 디지털화 수준이 특히 그렇다. 스마트팩토리의 경우 3만개 기업을 한꺼번에 다 하겠다는 식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순차적으로 역량 있는 기업 중심으로 시작해야 한다. 또 사업의 성과가 커지려면 중소기업 인력 대상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시스템 도입 기업이 늘어나는 만큼 빨리 방안을 만들어 실행에 옮겨야 한다.
-김혜동=사실 중소기업은 업무의 디지털화 자체가 안돼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업무 표준화와 데이터 디지털화가 선행돼야 IT를 통한 성과를 낼 수 있다.
중국과의 경쟁에서 국내 제조업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변화해야 한다. 한국이 강한 스피드를 활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제조업의 모듈화, 제품의 유연성 강화가 필수다. 결국 사람으로 다 하긴 힘들고 스마트팩토리와 IoT를 들여와 스피드를 높여야 한다. 우리 제조업이 경쟁력을 확보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삼열=의지나 역량이 없는 기업에 그럴 듯한 장비만 갖다 줘서는 남는 게 없다. 도와주면 어느 정도라도 성과를 낼 기업을 지원해야 한다. 정부R&D 예산이 내년 24조로 늘어나는데, 그 예산을 어떻게 잘 소화해서 국가 역량 업그레이드로 이어갈 지 섬세한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 정부 예산이 늘어났다고 기업들이 원래 자체적으로 하던 투자를 줄이고 정부 돈을 가져다 쓰는 현상이 생기지 않을지 우려도 된다.
-손병호=30조원까지는 늘어도 괜찮다고 본다. 우리나라 GDP 대비 R&D 투자비율이 높은 것은 민간투자가 75%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선진국은 전체 R&D 중 정부 예산 비중이 30% 이상이다. 우리나라의 민간을 제외한 GDP 대비 R&D 투자비율은 평균 수준이다. 정부R&D 예산이 올해 20조5000억원에서 내년 24조1000억원으로 늘어나는 것은 소재·부품·장비 특수뿐 아니라 최근 몇 년간 R&D 예산 증가가 미미했다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결과다. 주력산업 혁신과 신산업 육성, 국민 생활문제 해결과 사회문제 해결 등 정부R&D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기재부 중기재정운용계획 상 2023년으로 예정된 정부R&D 예산 30조원 시대 개막 시기를 가능한 앞당겨서 이러한 수요에 부응해야 한다. 정리=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