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만 같았으면 좋겠어요." 최근 금융공기업 관계자들을 만나면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다.
이는 올해 국정감사가 그 어느 때보다 수월하게 끝나 이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통상 국감이 다가오면 해당 부서 직원들은 소속 국회의원들의 요구자료에 밤샘작업을 하는 것이 기본인데, 올해는 이전만큼 센 노동이 없었다고 한다. 또한 국감기간(10월2~22일)동안 금융공기업의 보도자료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보도자료를 한 번도 배포하지 않은 곳이 있는가 하면 사회공헌 등 신사업과 무관한 자료를 두세 차례 보내온 것이 전부다. 국감에서 지적을 받으면 해명자료 배포에 급급한데 올해는 이러한 풍경조차 볼 수 없었다. 금융공기업 관계자에게 이에 대한 이유를 묻자 들려온 대답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치명적인 내용이 국감에서 공개되지 않으면 해명자료는 배포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게 효과적입니다. 예민한 시기엔 튀지 않는 것이 상책이거든요."
금융공기업들은 올해 국감을 무난히 넘겼지만 행정부(또는 행정기구·금융공기업 등)를 감사하는 기관인 소속 국회의원들은 불편한 기류를 느끼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하지만 올해엔 마찬가지로 이전 국감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알맹이가 없는 맹탕 국감이라는 여론의 질타가 쏟아져도 정작 국회에선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실제 올해 국감에서는 여느 때처럼 매서운 송곳 질문으로 국민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준 '국감 스타'를 찾기 힘들었다. 오히려 내년 총선에서 불출마를 선언한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과 표창원 의원이 스타 정치인으로 이름을 올렸을 뿐이다. 이유는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에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정국 이슈를 휩쓸면서 정치권의 관심사가 행정부보다 조국 인사에 쏠렸기 때문이다. 초점은 조국 전 장관의 퇴진이 합리적이냐, 불합리적이냐, 정치적이냐, 비정치적이냐가 아니다. 문 대통령의 인사가 이 같은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에 문제 제기를 하고 싶다.
국가기관들의 행보에 대한 감사와 감찰을 진행하고 사회적인 문제 등에 대해 비판하는 공개 청문회가 바로 국감이다. 1년에 한번 열리는 연례 행사로 국민들의 관심도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올해엔 아마도 국감 스타 배출보다 조국 전 장관의 잘못을 낱낱이 파헤치거나 그를 감싸 검찰개혁을 주창하는 것이 내년 총선에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 것이란 정치적 계산법이 작용했을 터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문 대통령의 인사가 정치적 셈법을 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준 것은 사실이다.
아쉬운 것은 국민들이다. 사실 국민들에겐 조국 사태보다 더 시급한 것은 먹고 사는 문제다. 그런데 정부가 제시한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2.4~2.5%)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 이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인정한 사안이다. 2%대 중반은 커녕 1%대로 추락할 위기에 놓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우리나라 GDP 성장률은 전기대비 0.4%를 기록하며 0%대로 주저 앉았다. 마이너스 성장을 한 작년 1분기를 제외하면 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이런 가운데 소비자물가 지수는 지난 8월 역대 처음으로 마이너스(-0.04%)를 기록하더니 9월에는 마이너스 폭(0.4%)이 더 커졌다. 경제 전문가들은 10월에도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디플레이션 공포가 엄습한 가운데 일본식 장기불황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앞으로의 경제 전망은 더욱 어둡다. 올해 세계 경제가 침체 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수출에 기반을 둔 우리 경제는 더욱 심각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런 가운데 작년 3월부터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은 1년 7개월째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고 설상가상 일본의 수출규제까지 더해지면서 우리 경제는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정치권은 내년 총선만 바라보고 있고 정부는 우리 경제가 탄탄하다며 민생과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정부가 해법으로 제시한 방안도 부정적인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재정을 더 빨리 시장에 투입해 성장률 하향을 방어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했다. 결국 세금으로 성장과 고용을 끌어 올리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반발도 거세다. 경제전문가들은 세금투입으로 성장과 고용을 끌어올리는 것은 단기처방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곳간이 비면 더 큰 경제적 악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조국 사태가 일단락되면 재정투입과 경기침체가 최대 이슈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국감 등 특정 이슈가 있을 때 금융공기업 관계자가 아닌, 이제는 시장 상인, 택시기사, 지인들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다. "요즘만 같았으면 좋겠어요." 문재인 정권에선 기대하기 힘든 말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