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 장관과 검찰개혁 논란이 올해 국정감사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가운데, 한편에서는 잇딴 전력저장장치(ESS) 화재에 따른 안전대책 공방도 있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의원이 산업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ESS 화재발생은 총 25건으로, 총 피해액은 382억원에 달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6월 ESS 화재 사고원인 조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안전 논란이 잠잠해지는 듯 했지만, 이후 또 3건의 화재 사건이 발생하면서 시장은 다시 싸늘해졌다.
당시 전문가 등으로 조사위를 꾸려 진상규명을 했던 산업부는 화재원인에 대해 배터리시스템 결함, 전기충격에 대한 보호체계 미흡, 운용환경관리 미흡, ESS 통합관리 체계부재 등 복합적인 원인을 지목했지만, 모두 다 가능성일 뿐 명확한 화재 원인을 내놓지 못했다. 사실 당시 조사위가 사고 원인을 내놓을 당시부터 논란 재점화의 가능성은 이미 예견됐다. 업계에서는 조사위가 내놓은 사고 원인이 사실상 ESS 업계 전반을 문제로 지적한 것이기 때문에 대책의 실효성도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었다.
당시 정부는 보고서에서 "일부 배터리 셀에서 제조상 결함을 발견했으나 모사한 실증에서 화재가 발생하진 않았다"며 "제조 결함이 있는 배터리는 가혹한 조건에서 장기간 사용하면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등의 브리핑을 했다. 차라리 그냥 '운이 없었다'고 말하는게 나을 정도로 모호한 조사였다.
이 때문에 정부의 안전강화대책 이행 요청에도 ESS 사업장은 시큰둥할 수 밖에 없었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국내 ESS 사업장 1173개 중 안전조치를 이행했거나 ESS를 완전히 철거한 업체는 104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업계 일부에서는 대기업이 주도하는 배터리나 에너지관리시스템(EPS) 업체보다는 영세한 시공업체들의 실책일 가능성이 유력한 원인으로 꼽혔다. 실제로 LG화학과 삼성SDI 등이 해외에 공급한 ESS용 배터리에는 아직까지 화재가 났다는 소식이 들려온 적이 없다. EPS에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도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해외에 수출한 배터리와 국내 배터리의 품질이 다르기 때문인 것 아니냐는 루머도 나왔다. 특히 화재가 났던 배터리의 상당수가 특정 시기에 만든 제품이었다는 말이 나오면서 소문에 힘이 실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1000개가 넘는 시공사례에서 공통점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기 때문에 결국 조사결과도 모호하게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산업부는 국회의원들의 질타에 다시 발화원인을 규명하겠다고 답했다. 작년 조사위 구성 이후 반년 넘게 사업이 모두 중단되면서 관련 기업들이 고사위기까지 내몰렸는데, 또 다시 그때의 공포가 재현될까 업계는 노심초사하고 있다. 업계 일부에서는 정부가 책임추궁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명확한 표준 규격을 만들어 허가를 내주면 될 일이 아니냐는 볼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업계가 불만을 나타내는 이유는 우리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세계 ESS 시장이 본격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SNE리서치는 세계 ESS용 리튬이온전지 시장이 전년보다 38% 성장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1.6GWh에서 올해 16GWh 수준으로 증가하는 수준이다. 오는 2025년에는 86.9GWh까지 규모가 늘어날 것이라는 추정도 내놓았다.
국내 업체들은 이처럼 성장하는 해외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최근 급격히 성장한 중국을 비롯해 일본 업체와도 경쟁해야 하고, 유럽을 중심으로 등장하는 신흥 제조업체와도 경쟁해야 한다. 이런 와중에 터진 화재 사건과 모호한 책임소재 논란은 글로벌 수주 경쟁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이미 전기차용 배터리에서 수차례 화재가 났던 저가 중국산 배터리나 한국산 배터리가 별반 차이가 없지 않느냐는 압박이 올 수 있다. 더 큰 전기차 시장에까지 간접적인 영향이 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의 설익은 육성 정책이 되레 성장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2013년 30개에 불과하던 국내 ESS 사업장 수는 정부의 전기요금 할인 특례, 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지급 등 각종 지원책에 힘입어 지난해 947개로 급증했고 배터리 용량도 30MWh에서 3632MWh로 늘어나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지난해 기준 국내 ESS 시장 규모는 세계시장의 약 3분의 1을 차지했다.
업계 일부에서는 사업 시작부터 전문성을 갖추고 체계적인 육성책을 썼다면 이 같은 문제는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오히려 국내에서의 다양한 실적을 바탕으로 배터리 제조업체와 관련 시스템·부품 업체, 시공업체까지 동시에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을 것이다.
ESS의 안전성 확보는 당장은 피해가 있을지라도 먼 미래를 위해 반드시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할 숙제다. 그러나 책임소재 따지기만 급급했던 정부의 조사로 이미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논란만 더 커졌고,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인식도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이제라도 다소간의 금전적인 피해가 있더라도 정부와 민간이 함께 힘을 합쳐 책임을 분담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준비를 해야 할 때라는 주장을 강하게 해본다. 공무원들의 '무사안일'(無事安逸) 자세로 인해 우리 산업의 '백년지대계'를 놓치는 우(愚)를 범하지 않기를 간절하게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