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대한민국을 '갈등 공화국'이라고 한다. 언제부터 유행하게 된 표현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2018년 조사 결과를 보면 이러한 표현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이러한 인식이 최근 6년간 반복된 조사에서 거의 동일하게 나타나, 그것이 일과적 현상이 아님을 웅변한다.
한국은 서구 선진국이 장기간에 걸쳐 이루었던 산업화와 민주화, 세계화라는 역사적 발전 단계를 압축적으로 성취하며 지금도 빠르게 변신하는 역동적인 나라다. 그런 만큼 한국 사회의 갈등도 압축적으로 발전해 다양한 형태의 갈등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분출하는 특징을 보인다. 갈등은 개인을 넘어 우리 사회의 질서를 파괴하고 협력적 관계를 파괴하며 전체 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되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다. 한국 사회의 협력적 갈등 예방과 해결을 위해 다음 두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첫째, 공공 갈등과 정부 간 갈등을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체적 분쟁해결(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을 하루 빨리 제도화해야 한다. 그래서 법과 권위가 아니라 당사자 간 협상과 제3자 촉진(facilitation) 및 조정(mediation)을 통한 통합적 문제해결(integrative problem-solving)이 효과적으로 작동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사실, 대체적 분쟁해결 제도의 핵심적인 개념과 기술들은 이미 민간부문을 필두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다수 공공갈등 사례에서도 효과적으로 활용되어 갈등예방과 해결에 일조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밀양 송전탑 사건이다.
둘째, 역사적으로 구조화되고 사회적으로 조건 지어진 사회갈등의 예방과 해결을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의 불공정과 불평등 관행을 교정할 수 있는 적극적인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기존의 복지정책이나 노동정책 등 사회정책 일반의 변화만을 추구한다면 그를 둘러싼 더 큰 정치적 갈등이 생길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어느 나라에서든 사회갈등 해소를 위한 정책적 개입은 정치적 세력간 경쟁과 분열을 유발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사회갈등 해소를 위해서는 주어진 목표에 다가가는 절차와 과정을 먼저 개혁하는, 보다 근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공론장을 활성화해 그동안 소수 전문가들과 기술 관료들이 독점해온 의사결정 과정을 일반 시민에게 개방하고 그들의 공적 이성(public reason)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통해 민주주의의 담론 공간을 확장하되(참여민주주의) 학습과 토론이라는 숙의 과정(숙의민주주의)과 결합해 참여를 협력으로 전환시킴으로써 대규모 대중 참여가 '길거리 정치'로 귀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사회는 이미 신고리 원전 공론화 사례에서 보듯, 어려운 정책결정을 시민토의에 붙여 그 결과를 정책에 반영함으로써 심각한 갈등이 재현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이 공론화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여느 공론화와 다르게 처음부터 토론 결과를 정책에 적극 반영하겠다는 국정 최고 책임자의 약속이 있었고, 국무총리 산하에 중립적인 위원회 조직을 만들어 토론 과정의 투명성과 중립성을 확보해 사회적 수용성을 높인 것은 이전의 한국 행정현장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처럼 일반 시민의 숙의를 통해 합의형성을 지향하는 공론장의 활성화야말로 한국에서도 일상적인 삶의 현장과 대의제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며 배분적 거래를 통합적 거래로 전환하는 갈등예방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장기적으로 한국 사회에 합의제 민주주의를 뿌리내리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