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투자자 기업가치 띄우기
역량 못갖추고 서둘러 나서다
신라젠·헬릭스미스 잇단 실패
임상 인식·자세 전환 급선무

SK바이오팜 연구원이 신약 개발을 위한 실험을 하고 있다.     SK바이오팜 제공
SK바이오팜 연구원이 신약 개발을 위한 실험을 하고 있다. SK바이오팜 제공


신라젠의 '펙사벡'에 이어 헬릭스미스의 '엔젠시스' 임상마저 실패로 돌아가면서, 바이오업계에서는 한국 바이오산업이 신약개발의 마지막 고비를 맞고 있다는 진단까지 나오고 있다.

25일 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산업 전반에 신뢰도 추락을 야기하는 임상 실패 소식이 잇따르면서, 업계에서는 글로벌 임상을 대하는 인식·자세를 전환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당장 기업가치를 띄우려 무조건 글로벌 임상부터 추진하고 나설 게 아니라, 임상의 성패를 좌우하는 임상디자인 역량과 CRO(임상수탁기관)에 대한 통제력부터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이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한국 바이오산업이 임상3상·허가의 고비를 넘는 것은 요원하며, 신약개발 완성 단계의 문턱에서 좌절하는 과오를 반복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엔젠시스 임상실패 사태를 통해 CRO, 임상시험 수행 병원이 전혀 통제가 안 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면서 "결국 이는 바이오기업 내부에, 임상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세밀하고도 과학적으로 디자인하고 진행할 수 있는 전문가가 없다는 게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수 바이오기업의 R&D(연구개발) 수준이 글로벌 임상 3상에 진입하는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도, 임상디자인 설계 역량은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을 충족시킬 만큼의 준비가 안 돼 있다는 게 대한민국 바이오산업의 현주소라는 것이다.

정부가 바이오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을 밝힌 만큼, 더 늦기 전에 임상디자인 역량을 높이기 위한 장기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마련해 실행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승규 부회장은 "글로벌 임상 경험이 있는 다국적제약사 전문가들을 활용해 임상디자인 역량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정부가 지원하고, 기업이 이를 적극 따르는 양방향의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특히 관련 인력 양성에 힘을 쏟아야 할 때다"고 말했다. 이어 이 부회장은 "CRO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발전시키는 것도 급선무"라며 "대다수 임상이 CRO가 얼마를 어디에 쓰는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통제가 안 된 채 진행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근본적으로는 글로벌 임상3상을 기업가치 띄우기 수단으로만 여기는 시장 분위기가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바이오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국내 바이오산업계에서는 기업들이 주주, 투자자들의 성화 때문에 임상디자인 역량을 충분히 확보하기도 전에 서둘러 글로벌 임상에 나서는 경향이 짙다"고 꼬집었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임상3상 완료 후 시판허가 까지 통과하는 성공사례가 하나만이라도 나와주기만을 고대하는 분위기다. 성공사례가 도출되면 기업 간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임상 3상 프로세스와 성공 전략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기대다.

현재 국내 기업이 발굴한 후보물질 중 자력으로 FDA의 임상 3상을 통과한 것은 SK바이오팜의 뇌전증 치료제인 '세노바메이트'가 유일하다. 세노바메이트는 FDA에서 NDA(신약판매 허가) 심사를 진행 중이며, 오는 11월쯤 최종 허가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오픈이노베이션에 적극적인 유한양행도 '레이저티닙' 단독요법의 글로벌 임상3상을 독자적으로 추진할 계획을 갖고 있다. 레이저티닙은 기존 EGFR-TKI 치료제에 내성이 생긴 국소 진행 또는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타깃으로 개발 중이며, 지난해 유한양행이 얀센바이오테크에 1조4000억원 규모로 기술수출했다.

한편 헬릭스미스는 지난 23일 자사 당뇨병성신경병증 치료제 엔젠시스의 임상 3상에서 일부 환자가 위약(僞藥)과 약물을 혼용했을 가능성이 발견됐으며, 이에 대한 별도의 조사가 필요하다고 공시했다. 위약과의 혼용 가능성 때문에 엔젠시스의 효과가 왜곡돼 명확한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됐다는 설명으로, 내년에 임상 3상을 다시 재개한다는 방침이다.

김수연기자 newsnew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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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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