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내년 국가연구개발 예산이 올해보다 무려 17.3%나 늘어난 24조원으로 증액되고, 대일 의존도가 높은 25개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에 3년 동안 5조원이 투입된다. 우리나라 산업기술의 산실인 KIST에서 떠들썩하게 개최된 국무회의의 결정이다. 정부가 역사 문제 해결에 실패해버린 외교의 대안으로 과학기술을 '소환'한 것이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강한 경제에 필요한 소재강국을 만드는 것이 정부가 과학기술에 던져준 새로운 '소명'이다.

그동안 비효율·비윤리의 오명을 쓰고 뒷방으로 밀려나버렸던 과학기술의 입장이 난감하다. 60년 동안 땀 흘려 이룩한 세계 최고의 원전 기술은 헌신짝처럼 내던져버려 놓고 또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라는 요구가 부담스럽다. 자칫하면 외교·정치·정책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과학기술이 온전하게 떠안게 될 수도 있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고 조국(祖國)의 미래를 위한 노력을 외면해버릴 수도 없다. 과학자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정부의 갑작스러운 호의에 감지덕지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릴 때가 아니다.

기재부가 두 달 만에 뚝딱 만들어낸 어설픈 정책은 절대 믿을 것이 아니다. 예산을 투입하고, 금융·세제·행정 지원을 강화하고, 규제를 완화한다고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고, 새로운 산업이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관료주의의 틀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안이하고 고답적인 대책으로는 절박한 현실을 극복할 수 없다.

오늘날 우리는 중국·독일·미국·일본에 이어 세계 5위의 소재·부품 강국이다. 작년에는 소재·부품 분야에서만 1390억 원의 무역 흑자를 기록했다. 아무 것도 없는 맨땅에서 시작해서 40여 년 동안 애써 이룩한 성과다. 1970년대 후반의 정밀화학산업이 소박한 출발이었다. 그동안 산업용 소재 개발에 꾸준히 노력해왔다. 2001년에는 소재·부품 전문기업 육성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만들었고, 지금까지 5조 40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그런 성과가 분명하게 반영된 정교한 정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물론 아직도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있다. 아직도 개발해야 할 첨단 소재·부품은 지천으로 널려 있다. 일본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 해소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소재·부품·장비를 국산화하겠다는 시도는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소재·부품 생산의 분업과 협업의 전통은 인류가 본격적으로 도구를 사용하지도 못했던 150만 년 전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우리의 목숨줄인 자유무역 체제를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 국가적 분업과 협업이 우리의 유일한 생존 수단이라는 뜻이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강한 경제를 만들려면 정부가 그동안의 잘못된 과학기술 정책을 서둘러 바로 잡아야 한다. 과학기술이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적극적인 비호 속에서 안주해왔던 적폐라는 비뚤어진 인식을 확실하게 버려야 한다. 끝없이 추락해버린 과학자의 기(氣)를 되살리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탈원전 정책을 하루빨리 폐기해야 한다. 과도한 신재생에 의한 심각한 환경 파괴, 전력 수급과 전기요금의 불안정, 그리고 끝없이 불거지고 있는 신재생의 비윤리성으로 탈원전의 정당성은 이미 빠르게 퇴색되고 있다. EU와 미국에서도 안전성을 인정해준 우리의 원전 기술은 내동댕이쳐버리면서 강조하는 소재기술 국산화에 대한 관심은 무의미한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과기부의 어쭙잖은 개입도 인류 공동의 발전을 추구하는 과학기술계의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국제원자력기구는 사고의 원만한 뒤처리를 위해 공동의 지혜를 모으는 곳이다. 자연재해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이웃을 궁지에 몰아넣는 싸움터가 절대 아니다. 과기부 차관이 과학적 전문성이 의심스러운 환경단체의 대변인을 자처해서는 안 된다.

황당한 의혹만으로 원로 과학자와 세계 최고의 과학자를 궁지에 몰아넣는 잘못된 행태도 당장 중단해야 한다. 기초과학연구원에 대한 과도한 행정감사가 '네이처'를 통해 알려지면서 전 세계가 우리 과학계를 안타깝고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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