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근로제가 확대 시행 100일을 앞두고 '뜨거운 감자'로 재부상했다. 정부가 50~300인 미만 기업에 적용되는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은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판단, 일부를 수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 가능성이 높아져서다. 최저임금에 이어 주 52시간제까지 문재인 대통령의 주요 대선 공약이 줄줄이 무산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주 52시간 제도를 수정·보완하는 데는 홍남기 부총리가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홍 부총리는 추석 연휴 첫날인 지난 12일 비공개 일정으로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수출 중소기업을 깜짝 방문해 주 52시간제 시행 연기 가능성을 언급했다. 마치 중소기업에 추석 선물을 주듯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다.
이것 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시 한번 쐐기를 박았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299인 이하 중소기업에 대 한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과 관련해 정부의 최종적 대응 방향도 다시 한번 점검해봐야겠다"고 적었다. 그의 발언은 그냥 나온 것은 아니었다. 기획재정부 실무진들은 일찌감치 관련 제도 수정을 위한 재점검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재부 관계자는 "현재 여러 대안을 놓고 검토 중"이라며 "제도 시행 시기가 얼마 남지 않은 만큼 빠른 시일 내 결론을 내겠다"고 했다.
세부적으로 어떻게 달라지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정부 차원에서 재검토되고 있는 만큼 어떤 방식이든 수정이 유력해 보인다. 핵심은 기업과 노동계를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대안이 있느냐는 거다. 사실 지금의 우리 경제만 놓고 본다면 주 52시간제는 아예 백지화하거나 2~3년 이후로 유예하는 것이 합당하다. 미중 무역전쟁과 일본의 수출규제, 중동발 석유 파동 리스크까지 대외 악재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기업들의 경영환경은 날로 악화하고 있다. 소비자물가는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소비자심리지수는 석 달째 하락세를 이어가는 등 내수는 더욱 침체되고 있는 상황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반대한 경제전문가들이 우려한 것도 바로 이 점이다.
그렇다고 이 제도를 백지화하거나 대폭 수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제도 시행기간이 몇 개월 남지 않았고 노조의 거센 저항에 부딪쳐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일반 직장인들에게도 허탈감을 줄 수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OECD 국가 중 주 49시간 이상 장기간 일하는 경우는 한국이 32%를 기록, 독일(9.3%), 이탈리아(9.9%), 미국(16.4%) 등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연간 평균 근로시간 역시 2024시간으로 OECD 평균시간(1759시간)을 크게 앞질렀다.
근로시간 단축 정책의 수정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7월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의 입을 빌려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바 있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2.9% 인상된 8590원으로 결정되면서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달성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김 실장은 "문 대통령이 경제환경과 고용환경, 시장 수용성을 고려해 최저임금위원회가 고심에 찬 결정을 내렸지만 어찌됐건 대통령으로서 대국민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그렇다고 소득주도성장의 폐기나 포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의 사과에도 노동계의 반발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확대돼 실질임금 인상률이 최대 7.8% 잠식된 것을 감안하면 이번 2.9% 인상은 오히려 삭감"이라며 "문 대통령이 사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민주노총 최저임금위원 전원이 사퇴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최저임금 정책으로 사과문을 발표한 것은 벌써 두 번째다. 문 대통령은 작년 7월에도 올해 최저임금이 결정된 후 "결과적으로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을 사과드린다"며 임기 내(2022년) 달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제 공은 정부의 손에 넘어갔다. 정부는 기업과 노동계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중장기적으로 더 많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대안이 무엇인지 제시해야 한다. 그 결과로 문 대통령이 세 번째 대국민 사과문을 작성하는 일이 있어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