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발레 갈라 공연을 보았습니다. 유럽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무용수와 세계적인 무용수들이 함께 출연하는 무대로 일찍부터 큰 기대를 모았었죠. 공연 레퍼토리도 그야말로 '종합선물'이었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백조의 호수'부터 '지젤' '돈키호테' 등의 그랑 파드되(남녀주인공 둘이 추는 춤)를 비롯한 주요장면들이 그림처럼 펼쳐졌지요. 그러나 프로그램 중반쯤부터 제가 잘 알지 못하는 모던발레 등이 펼쳐질 때는 생소한 음악과 뒤엉켜 머릿속이 복잡해지더군요. 게다가 외국인 발레무용수들의 이름은 왜 그렇게 외우기 어렵던지!공연이 시작되기 전 열심히 읽었던 전반부의 레퍼토리와 발레리노, 발레리나의 이름을 떠올려보려 애썼지만 공연이 이어지면서 그 이름들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스르르 사라져갔습니다. 저 혼자만의 경험이라면 나이 탓으로 돌리고 말았겠지만 일행 모두 무용수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빚어낸 무대의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었지요.
다음 날, 공연을 이끈 예술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조심스레 제 의견을 전달해보았습니다. 무대가 열리기 전에 작품과 무용수의 이름을 빔 프로젝터 등을 통해 한 번 더 공지해주면 무대의 감동이 두 배가 되지 않겠느냐고요. 중간마다 사진 캡션 같은 설명이 등장해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고요. 그 동안 저처럼 적극적인(?) 관객이 없었던 탓인지 예술감독은 매우 신선해하며 호의적인 답을 들려주었습니다. 다른 발레 공연을 앞두고는 보다 적극적으로 제안했지만 과연 이뤄질까 걱정했었죠. 그동안 다른 장르의 공연에도 그 비슷한 얘기를 많이 했었지만 제 의견이 제대로 반영된 적이 많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웬일일까요? 예술감독은 자막 대신 중간마다 나레이션을 띄워 청중들의 귀와 눈을 확 틔워주었습니다. 마치 심봉사가 눈을 뜨듯 그날 관중들은 발레와 함께 울리는 음악의 세계를 더 이해하며 확실한 행복을 체감했습니다.
비슷한 예가 전주에서도 있었습니다. 전주시 후원 비바체실내악축제가 그것으로, 무료공연이었습니다. 출연진은 모두 소속사가 있는 유명 아티스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적은 지방 공연장의 예산에도 개의치 않고 자의로 출연한 참 아름다운 주인공들이었죠. 공연장은 수많은 인파가 만든 만석이었습니다. 통로에 간이의자가 등장할 정도였으니까요. 레퍼토리도 출연진의 입장에서 정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청중의 입장에서 추린 것들이어서 박수가 쉴 틈이 없었습니다.
사실 최근의 클래식음악 청중 기간 현상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여전히 숱한 이름의 클래식음악 페스티벌이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저는 그 많은 페스티벌들 중 상당수가 해당 예술감독의 지적 호기심을 채우거나 출연진의 기량을 한껏 자랑하고픈 고난이도의 레퍼토리로 구성된 경우를 많이 보곤 합니다. 지역민들을 위한 행사를 표방하면서도 친절한 설명 한 줄 없이 진행되는 그 공연에서 청중은 도대체 무슨 음악이 연주되는 건지, 이름조차 제대로 되뇌지 못한 채 돌아가는 수가 많습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에도 있듯이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 존재는 비로소 의미가 생기고 뇌리에 각인되는 법인데도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각 공연의 이름과 의미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야말로 클래식음악계가 꼭 가슴에 새겨야 할 명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객석은 요즘 한 기업의 지원을 받아 기업의 고객 행사를 맡아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행사는 불특정 관객들을 위한 음악회인데다 6개월이나 되는 긴 프로젝트여서 내심 저희 나름대로의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겠다는 바람이 컸습니다. 그래서 저 스스로 그동안 다닌 음악회를 참고삼아 열심히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연주자들도 직접 섭외했습니다. 클래식음악에 익숙지 않은 고개들을 위한 공연 때 가장 먼저 신경 써야하는 일은 곡 선정입니다. 보통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되는 음악회의 전 출연진(각 공연당 독주자를 포함하여 4~5명의 앙상블이 초대됩니다)과 일일이 상의해야 하는 데다, 시의적절한 콘셉트까지 고려해야 하니까요. 저로서는 누구나 한번쯤은 들었을 법한 익숙한 클래식음악에 덧붙여 과감하게 재즈나 영화음악도 요구합니다만 연주자에 따라서는 난색을 보이는 수도 있지요. 평소에 어려운 곡 위주로 연습하다가 쉬운 곡을 할 경우 실수라도 하면 청중이 금방 눈치를 챈다나요? 그리고 쉬운 곡일수록 청중의 마음에 들기가 더 어려운 법이라는 아이러니도 있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역시 청중이지요. 그들을 위해 연 잔치니까 그들의 취향에 걸맞게 구성하는 게 옳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사회자를 따로 선정해 곡해설도 아끼지 않고, 사회자가 음악가들과 함께 재미있는 대화도 나눕니다. 매 연주가 끝나면 감동받은 관객들이 연주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으러 줄 서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저에겐 큰 즐거움이죠. 아마 이 맛에 많은 연주자들도 그 고달프고 녹록지 않은 연습시간을 견뎌내는 게 아닐까요? '객석'이 기획한 콘서트의 청중들이 "다음 공연은 또 언제 해요?"하고 물어올 때 저도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낀답니다.
'객석'은 그렇게 한걸음씩, 한 템포씩 새로운 공연문화를 만들어 가려 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기업이나 단체들이 그런 공연무대를 마련해 더 많은 청중들이 클래식음악을 손쉽게 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바라면서요. 사실 클래식음악을 사랑하는 방법은 어쩌면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반성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