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살고 싶은 집' 내용서
주거 빈곤 아동들 한숨의 탄식

"내 방을 갖고 싶어요", "방이 많은 집에 살았으면 좋겠어요", "큰 창문과 욕조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지난 23일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경기도 모 초등학교 학생들과 함께한 '내가 그린 우리 마을' 행사에서 만난 학생들이 '살고 싶은 집'을 저마다 묘사한 내용이다. 어린이들이 사는 지역 인근에는 공업단지가 있다. 이들 다수는 이른바 '도심형 주거빈곤'에 노출돼 있다. 겉보기에는 문제가 없는 빌라촌에 살지만, 속내를 보면 10평도 채 되지 않는 원룸에 여러 식구가 모여 사는 인구 과밀형 주거빈곤을 겪고 있다.

학교 행사에 이어 지역 복지관·재단 관계자들과 지역 내 한 주거 빈곤 가정을 방문했다. 9평 원룸에 40대 부부와 초등학생 2명, 미취학 아동 2명이 함께 사는 전형적인 도심형 주거빈곤 가정이었다. 3살 된 막내의 재롱을 이야기하며 흐뭇하게 웃던 부부는 주거 현실을 설명하면서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머니 A씨는 "붙임성이 좋아 모르는 어른에게도 꼭 말을 붙이고 인사를 하는 아이가 귀엽고 사랑스럽다"면서도 "바로 옆 빌라에서 강력범죄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자주 듣다 보니 '모르는 사람을 조심하라'고 다그치게 된다"고 말했다.

비좁은 공간에서 잠자리가 편할 리 없다. 침대에서는 부부와 막내가 각각 가로로 누워 자고, 초등학교 3학년인 첫째와 1학년인 둘째, 5살인 셋째는 바닥에 차례로 이불을 깔고 잔다고 한다. A씨는 "아이들이 잘 때마다 서로 발가락이 닿는다고 다툰다"면서 "첫째는 점점 클수록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한지 장롱 옆 구석에서만 자려고 해 마음이 좋지 않다"고 했다. 밤에 화장실에 가려고 해도 옹기종기 모여 자는 아이들을 밟게 될까 봐 부부는 늘 조심해야 한다. 아이들이 클수록 9평 원룸은 더 좁게 느껴질 것 같아 이사를 준비하고 있지만, 형편상 쉽지는 않다.

재단 연구에 따르면 과밀 주거 기간이 길어질수록 아동의 비만율·인터넷 사용 시간·방임 경험과 성추행 경험이 증가하고, 학업 성취도와 주관적 행복감·학교 생활 적응도는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단에서는 아동들이 주거빈곤 문제에 더욱 취약하다고 보고 지역 아동센터와 연계해 연구와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주거빈곤 가정에 월세 보증금을 지원해 더 넓은 곳으로 이사할 수 있게 하거나 전세임대주택 이주를 돕기도 한다.

그러나 이같은 직접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 재단 관계자는 "주거빈곤 가정이 좋은 환경으로 이사를 하면 후원자 등이 '왜 이렇게 좋은 집에 살게 하냐'며 반발하기도 하고, 소득은 여전히 부족한데도 주거환경이 개선됐다는 이유로 각종 지원금이 끊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재단이 정책제안 활동을 병행하는 이유다.

재단 관계자는 "아동 주거빈곤 가구가 공공 임대주택에 입주할 우선권을 갖게 하고, 주거 기본법에 아동에 대한 지원을 명시하는 등 정책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병서기자 BShw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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