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무너질까 땅이 꺼질까 걱정하느라 할 일을 못했던 기(杞)나라 사람들의 걱정을 기우(杞憂)라고 했다. 그런데 도통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기우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국제분업의 질서를 무너뜨리면서 일본이 수출규제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수출규제 품목의 하나인 고순도 불화수소는 일부 중소기업에서 개발하였지만 대기업에서 받아주지 않아서 기술이 사장되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사실관계는 명확하게 판명된 바가 없어서 이면에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평생 연구를 해 온 사람으로서 연구개발에 성공한 중소기업의 입장과 개발된 기술을 받아주지 못한 대기업의 사정을 이해할 수는 있다.
대개의 연구는 연구실 테이블에 설치할 정도의 작은 규모의 설비에서 시작된다. 연구팀은 잘 통제된 환경과 조건에서 작은 설비를 사용하여 원하는 성능 혹은 품질을 가진 제품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 다음으로는 실험설비의 규모를 키워서 현실에 가까운 조건하에서 제법 큰 규모로 생산을 한다. 규모를 키워가는 것은 단순히 기계의 크기만을 비례적으로 키우는 것 이상의 문제가 발생한다.
연구팀은 규모를 키워서도 제품의 성능이나 품질이 원하는 목표를 달성했는지 확인하고, 필요하면 연구를 보완하여 원하는 품질을 달성하도록 한다. 그럼에도 연구시설 규모는 상업용 생산을 할 정도의 규모가 아니므로, 대규모 상용화 생산에서도 원하는 품질이 안정적으로 확보될 수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상용화 규모에서 품질을 인증할 정도로 설비의 규모를 키우려면 중소기업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많은 비용투자가 필요하다.
이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대기업에서 받아주기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중소기업은 제품 판매에 대한 확신 없이 품질을 인증할 대규모 설비를 마련할 비용을 지출하기는 어렵다. 자연히 대기업은 상용화 품질에 대한 확신 없는 제품을 단지 연구개발에 성공하였다는 사실만으로 생산라인에 받아주기 어려운 것이다. 더욱이 생산의 국제분업이 일상화되어 일본으로부터 확실한 성능의 제품을 공급받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중소기업의 개발제품으로 생산라인을 변경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당연하고 문제가 없을 것으로 믿어지던 국제 분업생산 체계가 정치적 이유로 교란되는 유래 없던 상황에 직면하고 있고, 정부는 이번 기회에 일본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를 바꾸겠다고 한다. 경제부총리 산하에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위원회와 대·중·소기업협력상생위원회를 신설하고 앞으로 7년간 매년 1조원 이상을 소재부품 개발연구에 투자하겠다고 했다. 모두 필요한 대책이다. 하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연구개발은 단순히 기술의 개발이 끝이 아니다. 정부는 연구자금의 제공 뿐 아니라 개발 제품의 상용화까지 걸림돌을 치워주는 일관된 과정을 지원하여야 한다.
필자가 관여하고 있는 물기업의 연구개발도 유사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실험실에서부터 몇 단계의 규모 증가를 통하여 연구개발에 성공한 새로운 기술과 장비라고 해도 수도사업 현장에 투입하기에는 너무 어렵다. 담당자는 새로 개발된 기술을 적용했다가 만약 예상외의 문제가 발생할 때에는 수만, 수십만의 주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가고, 민원이 발생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새로운 기술이 다른 도시에서 성공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전에는 채택하려 하지 않는다. 아무도 선의로 최초 사용자가 되었다가 문책 받고 싶지 않으니 결과적으로 개발된 기술은 사장되고, 연구개발 비용도 낭비되는 현실에 부딪히게 된다.
소재부품 기술이든 물기술이든 최종적으로 시장에 투입될 때 발생되는 장벽을 정부가 앞장서서 해소해 주지 못한다면 연구개발비의 배정만으로는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개발된 기술은 시장이 받아주어야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우려는 연구환경과 규모가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연구비만 갑작스럽게 증가되면 좀비연구소, 좀비연구원이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고, 바늘 허리매어 못 쓴다고 했다. 부디 막대한 예산이 효과적인 정책으로 시행되기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