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 임기를 1년 넘게 남은 상태에서 사퇴한다고 한다. 뜻밖이다. 어지간해서는 사람을 잘 교체하지 않는 현 정부 분위기와는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더구나 방송통신위원장이라는 자리는 국무위원으로 정부부처의 장이기도 하지만 여·야간 정치적으로 안배해 구성하는 독립규제위원회의 수장이기도 하다. 때문에 법적으로 독립성과 임기를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법제도적으로 보장받고 있다고 해서 실제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이효성 위원장은 인터넷 미디어 규제를 놓고 청와대와 갈등해 왔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인터넷 규제는 학계에서도 의견이 크게 엇갈리는 쟁점이다. 그러므로 인터넷 매체들을 법적으로 규제할 경우 갈등만 심화되고 또 제대로 규제가 되지도 않아 형평성을 잃을 수도 있다. 역대 어느 정권도 인터넷 규제에 성공한 경우가 없었다. 그래서 학자 출신인 이효성 위원장 입장에서는 더욱 신중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방송통신위원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미디어를 둘러싼 다양한 시각들과 대립되는 의견들을 균형있게 수렴해 공정하게 규제하기 위한 목적을 담고 있는 것이다. 방송과 통신의 경계가 사실상 붕괴되고 공영방송, 지상파방송, 유료방송 같은 매체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이원규제체계로 운영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전 정권에서 만든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명분일 것이다.
그러므로 방송통신위원회는 정부의 생각과는 언제든지 다른 입장을 가질 수 있고, 불편하겠지만 정부는 그것을 인정해주어야만 한다. 물론 개별 위원들의 독립성도 보장해주어야 한다. 독립성을 인정하는 최선의 방법은 위원장과 위원들의 임기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것이 훼손된다면 독립규제기구는 존립할 수 있는 토대가 무너지는 것이 된다. 우리 공영방송이 정치적으로 독립되지 못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정권이 바뀌면 임기가 남은 이사들을 이런 저런 이유들로 밀어내는 것이다. 더욱이 방송통신시장 전반을 규제하는 방송통신위원회는 절대 그래서 안 될 것이다.
솔직히 지금 같은 이원화된 방송·통신 규제기구는 모든 미디어들이 융합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연계되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지 않은 비효율적인 제도임에 틀림없다. 물론 방송매체 중에 정치·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방송들만 별도로 규제해야 한다는 논리가 전혀 일리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정치·사회적 영향력은 인터넷 미디어와 1인 유튜버방송으로 급속히 이동해가고 있다. 당연히 별도의 독립된 규제기구가 필요하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점점 약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독립규제기구의 상징처럼 되어왔던 영국의 BBC트러스트가 재작년에 폐지되고 Ofcom이 통합 규제하게 된 것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제도를 갑자기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논의와 공론화를 거쳐 바람직한 제도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때까지는 현재의 제도와 제도를 만든 원칙과 목적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특히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과 통신을 규제하는 기구로서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상징적 존재다. 만약 방송통신위원회가 정치적 압력으로 독립성을 위협받는다면 그것은 결국 모든 방송의 독립성을 위협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방송통신위원장이라는 자리는 쉽게 임명되고 또 교체하는 자리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야당으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으면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장관들이 적지 않은데, 정작 외부압력으로부터 보호받아야할 방통위원장이 가장 먼저 자진 사퇴한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어쩌면 이게 우리 방송이 정치적으로 독립되어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