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식 외교안보평론가·전 駐벨라루스 대사
강원식 외교안보평론가·전 駐벨라루스 대사
강원식 외교안보평론가·전 駐벨라루스 대사
일본의 수출규제가 '백색국가' 목록 삭제로 이어지면 한국 경제가 버티기 어렵다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작년말 우리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신일철주금의 손해배상을 판결한 후폭풍이다. 국내에서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은 이를 일본의 경제전쟁 도발로, 심지어 문정인 대통령 특보는 문재인정부 전복 음모로 규정하고 항일전쟁의 불을 지피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당초 수출규제를 발동하면서 '한국의 대북 전략물자 유출'을 공식 이유로 삼았다. 본심은 경제보복일지라도 적어도 겉으로는 북한으로 유출되기에 규제한다는 명분을 내세운 것이다. 그러자 한국 정부는 이를 '근거 없는 주장'이라 일축하고, 우리 국방부는 오히려 유엔제재 위반 선박이 일본 항구에 입항하였다고 발표했다. 서로 누가 더 북핵 개발에 도움을 주었는지 누가 더 유엔제재를 위반하였는지 싸우고 있다.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미국이 중재 개입할 때가 아니다"고 밝혔듯이 미국은 관망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제기한 명분에 더 동조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한일 정보보호협정(GSOMIA) 폐지 가능성까지 언급하자, 미 국무부는 즉각 반대 입장을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문재인 대통령의 요청을 받았으나, 아베 총리도 요청하면 직접 나설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치밀하게 준비했을 일본이 요청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일본인은 혼네(속)와 다테마에(겉)가 다르다고 한다. 그것은 일본인이 다테마에를 중시한다는 뜻이다. 일본이 수출규제를 발동하면서 북핵을 명분으로 삼았다면, 그 속내가 무엇이든 명분을 해소하는 것이 일차적 해법이다. 북핵은 우리뿐 아니라 일본에게도 사활적 안보현안이다. 화쟁(和諍)은 서로 다름속에서 같음을 찾는 것이다. 북핵은 일본이 내걸은 명분일 뿐 아니라 한일 양국이 반드시 성취해야 할 공동의 목표이다.

첫째, 전쟁으로 규정하고 대응하는 것은 위험하다. 선동가만이 반일감정과 전쟁을 부추겨 사리사욕을 취하려 한다. 위기 수준은 낮추고 냉철하게 대응해야만 한다.

둘째, GSOMIA 파기는 안된다. 지소미아 재검토가 압력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면 큰 착각이다. 한일 지소미아는 북한의 위협에 대응해 2016년 체결됐는데, 청와대의 재검토 발언 직후 미 국무부는 "한일 지소미아는 지역 평화와 안보를 유지하고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북한의 비핵화(FFVD)를 달성하는 우리 공동노력의 중요한 도구"라고 규정했다. 그동안 미국 조야에서 북핵 대응을 둘러싼 한미간의 부조화를 의심하는 분위기가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지소미아 파기는 한국이 전략물자를 북한에 유출했다는 일본측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나아가 미국은 북핵폐기를 위한 국제공조 동참 거부 의사로 받아들일 소지가 크다.

셋째,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의 핵심은 북핵이어야 한다. 일본이 내건 명분을 해소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일본과 미국에 특사를 파견하고, 대북 전략물자 유출방지 및 유엔제재 이행을 위한 공동 노력을 다짐하라. 전략물자의 대북 유출을 둘러싼 과거의 책임을 다투기 보다는 향후 방지책을 마련함으로써 미래지향적으로 갈등을 풀자고 강조하라. 나아가 한국과 일본이 비핵국가로서 북핵의 직접 위협대상국인 점을 지적하고 북핵 위협에 대한 공동대응도 제안하라. 당연히 북한 미사일에 대한 방어(MD)와 응징보복(MPR), 핵방호도 논의할 수 있다. 이는 한국의 안보에도 유효하다. 일본이 제기한 명분을 우리가 먼저 해소하면 일본도 수용하고 미국도 반길 것이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