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과학기술연차대회에서 박종구 나노융합2020사업단장(왼쪽부터), 최유순 지멘스 부장, 장석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이 제조업 혁신전략을 논의하고 있다. 안경애기자
대한민국과학기술연차대회
"가성비에 초점을 둔 제조업 성장전략은 한계를 드러냈다. 일본과의 갈등으로 드러난 우리 제조업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산업 체질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일본 정부가 4일 첨단소재 3종에 대한 한국 수출규제 강화조치를 발동, 반도체·디스플레이·스마트폰 등 주력산업에 타격이 예상되는 가운데 이를 계기로 제조업 체질을 전면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나노기술 분야 석학인 박종구 나노융합2020사업단장(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4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한 '2019 대한민국과학기술연차대회'에서 "일본의 소재 수출규제는 4차 산업혁명 전반에서 심각한 영향을 가져올 것으로 우려된다"면서 "글로벌 공급사슬 중 하나만 깨져도 발목이 잡히는 상황에서 우리 제조업이 버티려면 전면적 전략 수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단장은 "글로벌화의 나쁜 효과가 드러나면서 한 기업에 문제가 생기면 전체 가치사슬이 깨지고, 산업 전반에 정치 리스크가 커졌다"면서 "우리 산업의 발목을 잡는 요소에 대한 대응전략 수립과 실행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박 단장은 "첨단소재에서 이미 확인됐지만 반도체 장비 역시 자급률이 18%에 불과해 해결하지 못 하면 또 발목이 잡힐 수 있다"면서 "사업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선진국들과의 협력 파트너로서 위상 확보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장석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조립형·부품형 성장전략 중심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을 키우면서 핵심 소재나 부품은 해외에 의존하다 약점을 스스로 키워왔다"면서 "핵심 경쟁력이 취약하다 보니 같은 산업을 하더라도 일본·독일 등에 비해 부가가치가 떨어지고 이것이 GDP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 연구위원은 "일본 정부의 제재를 계기로 힘들더라도 소재·부품 산업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면서 "미래 성장 산업에 필요한 핵심 소재와 정밀 부품을 전략적으로 국산화하고 제조업을 고부가가치·고생산성 품목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장 연구위원은 "지금까지 하던 것에서 조금만 수정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은 확실히 버려야 한다"면서 "혁신과 위기돌파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시점이 또 한 차례 도약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허은녕 서울대 교수(에너지시스템공학부)는 "일본은 핵심 소재를 전략물자로 구분해 수출을 규제하는 법안을 만들었는데 한국은 일본이 영원히 줄 거라고 가정하고 산업의 미래를 맡겨왔다"면서 "우리 기업들도 소재 국산화를 준비했지만 돈을 더 주고 사오는 방법을 선택한 결과 현재 사태를 맞았다"고 지적했다. 제품 제조만 집중하고 원재료 확보는 간과한 결과, 심각한 리스크를 맞게 됐다는 것이다.
허 교수는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미국산 셰일가스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인데 미국이 가스를 통상무기로 쓸 경우 방법이 없다"면서 "유럽에서는 이미 러시아가 가스 공급으로 유럽 국가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원료와 중간재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취약한 에너지 산업 구조도 제조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면서 "4차 혁명을 제대로 하려면 에너지 분야 혁신도 반드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진우 서울대 명예교수(산업공학과)는 "금융위기 이후 미국 등 선진국이 제조업을 경쟁적으로 키우면서 경쟁의 양상이 달라졌다"면서 "1980년대 대기업들이 세계 시장에 뛰어들어 자동차·제철·반도체 산업에 도전했을 때 다들 꿈도 꾸지 말라고 했지만 이제 1등을 한다"면서 "그런 성공경험을 중소·중견기업으로 확장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유순 지멘스 부장은 "제조업 성장을 위해 앞으로 무엇을 먼저 할 지부터 국가전략을 세워 실행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