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삿돈 322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수사를 받다 해외로 도주한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아들 정한근(54·사진) 씨가 21년 만에 중미 국가인 파나마에서 붙잡혀 지난 22일 한국에 송환됐다. 정 전 회장의 넷째 아들 한근(54)씨가 국내로 송환됨에 따라 '한보 사태'의 장본인인 정 전 회장의 소재 파악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23일 대검찰청 국제협력단(단장 손영배)에 따르면 정한근 씨는 1998년 검찰수사 도중 도주한 뒤 캐나다 시민권자 A(55)씨인 것처럼 속여 캐나다·미국의 영주권과 시민권을 취득한 뒤 2017년 7월부터 에콰도르에 거주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정 씨는 1997년 11월 한보그룹 자회사인 동아시아가스(EAGC)가 보유한 루시아석유 주식 매각자금 322억원을 횡령해 스위스의 비밀 계좌로 빼돌린 혐의다. 그는 이 같은 혐의로 1998년 6월 서울중앙지검에서 한차례 조사를 받은 뒤 도주했다. 그해 7월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발부됐지만,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영장이 집행되지 못했다.
이후 정씨의 소재를 추적하던 검찰은 2017년 정씨가 미국에 체류 중이라는 측근의 인터뷰가 방송된 일을 계기로 지난해 8월부터 본격적으로 정씨와 가족의 소재 추적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정씨의 가족이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 중인 사실을 파악했고, A씨가 정씨 가족의 캐나다 거주에 연루된 사실도 확인했다. 하지만 A씨가 캐나다에 간 사실이 없고, 2010년 국내에서 다른 이름으로 개명한 사실을 수상하게 여긴 검찰은 정씨가 A씨의 이름을 이용한 사실을 파악해 A씨 명의의 영주권과 시민권 관련 자료를 확보해 조사했다.
그 결과 정씨가 A씨의 이름으로 캐나다 영주권(2007년), 미국 영주권(2008년), 미국 시민권(2011년), 캐나다 시민권(2012년)을 각각 취득한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2011년에는 미국 시민권 취득을 위해 A씨의 이름으로 대만계 미국인과 결혼한 사실도 파악됐다.
한편 검찰은 정 씨 조사를 통해서 해외로 도주한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생사 여부와 소재지 등도 파악 중이다. 정 전 회장은 횡령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을 확정받은 뒤 달아났다.
정 전 회장은 서울 대치동 은마상가 일부를 영동대 학생 숙소로 임대하는 허위 계약을 맺고 임대보증금 명목으로 72억 원을 받아 횡령하는 등 혐의로 기소돼 징역 3년6개월을 확정받았지만 2007년 도피한 뒤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그는 1991년 12월 수서지구 택지 특혜분양 사건에서 국회의원 등 정·관계 인사들에게 뇌물을 뿌린 혐의(뇌물공여 등)로 구속기소돼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1995년 특별사면된 바 있다. 1997년 한보사건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02년 말 다시 특별사면돼 '사면 재수생'이라는 호칭을 얻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