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주요 기관들이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속속 하향 조정하면서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도 다음달 3일 발표를 목표로 준비하는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하경방)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2.5% 이하로 하향 조정하는 방안을 저울질하고 있다. 1분기 마이너스 성장의 충격 속에 반도체 가격이 좀처럼 회복세로 돌아서지 않고,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하면서 현실론이 힘을 얻은 데 따른 것이다. 경제 상황에 걸 맞는 성장률 목표치를 제시한 뒤 경기 회복을 위한 수단을 총동원하겠다는 포석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경기 침체로 민심이 지금보다 더 악화하면 국정 운영 전반에 경고등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에 제출된 6조7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도 두 달 가까이 표류하고 있어 추가 재정 보강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서 민간 활력을 회복할 규제 개혁과 세제 지원에 방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도 최근 경제 참모진을 교체하면서 기업과 민생 경제 활력 회복이 시대적 소명이라고 밝힌 바 있다. 투자 활성화를 위한 정부와 기업 간 만남도 지금보다 활성화할 것으로 보인다. 김상조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은 21일 세종시 공정거래위원회 청사에서 이임식 직후 기자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재벌 총수를 만날 의향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원하시면 누구라도 만나서 얘기를 듣겠다"고 말했다. 그 당사자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라도 만나겠느냐는 질의에도 "요청하면 만나겠다"고 밝혔다.

한국경제는 버팀목인 수출을 비롯해 투자와 고용, 소비 등 경제 지표 전반이 빠르게 가라앉고 있다. 올해 1분기 제조업 해외 직접 투자액이 지난해보다 45%나 폭증한 반면 이 기간 중 국내 설비투자는 -10.8%로 21년만에 최악 수준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하경방의 핵심은 "기업들의 피부에 확 와 닿는 대담한 투자 활성화 대책"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기업들과 잇따라 만나고 있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14일 "민간 설비투자나 건설투자가 굉장히 부진해서 이런 분야에 대해선 하반기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현재까지 예고된 투자 대책은 10조원 규모의 민간·공공 투자를 지원하는 '제3단계 기업투자 프로젝트'다. 각종 규제나 행정절차 탓에 막혀 있던 사업을 정부가 풀어내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부터 1·2단계 프로젝트를 통해 현대차의 신사옥인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등 막혀 있던 6조원 이상 대규모 기업투자 프로젝트에 대한 조기착공을 추진한 바 있다. 3단계 프로젝트에는 일단 4조5700억원이 투자될 예정인 화성 국제복합테마파크 사업이 담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부는 기업 투자가 하반기부터 조기에 집행될 수 있도록 하경방에 다양한 세제 지원책을 담을 것으로 보인다. 민간 경제계는 투자 여건이 열악한 국내기업들이 투자를 활성화하려면 세액공제 확대가 절실하다고 주장해왔다. 앞서 정부도 19일 발표한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 및 전략'에서 외국에 나가지 않고 국내에 투자해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첨단기술, 신산업, 위기·낙후지역 등 투자에 대해 세제 지원을 확대·강화하겠다는 복안을 밝힌 바 있다. 세제 지원책으로는 연구개발(R&D)·설비투자 세액공제 확대 등이 거론된다. 외국으로 나가는 투자를 되돌리기 위해 국내 산업단지 안에 공장을 설립하면 취득세를 감면하는 형태의 지원책이 나올 수도 있다.

올해 말 종료 예정인 산업현장 생산성 향상·안전시설 투자세액공제 제도를 연장하는 방안도 유력하다. 정부가 지난해 세법 개정을 통해 도입한 가속상각(자산을 취득한 초기에 감가상각을 크게 해 세금을 덜 내면서 투자금액을 조기에 회수하는 효과가 나타나는 제도)을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일 수 있다. 하지만 4년간 지속된 세수 호황이 막을 내리고 있는 상황이어서, 세제 지원책이 민간 기업들의 기대 수준에 못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경방에 어떤 소비 활성화 대책이 포함될 지도 주목된다. 일단 내국인 면세점 구매 한도 상향이 유력하다. 현재 내국인은 입·출국장 면세점에서 3600달러까지 구매할 수 있는데, 구매 한도를 더 높여 소비를 촉진하는 방안을 기재부가 검토하고 있다.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행사인 '코리아 세일 페스타'의 규모를 키우고 기간을 늘리는 것도 검토 대상일 수 있다. 소비 활성화를 위한 추가 세제 지원책도 하경방에 담길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이미 유류세·자동차 개별소비세 한시 인하 조치를 연장한 바 있다.

세제 혜택은 소비 활성화 효과가 작지 않다는 분석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개별소비세 인하 전 11개월간 국산차 판매가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4.2% 감소했는데, 개소세 인하 후 11개월 동안(2018년 7월∼2019년 5월)에는 1.2%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한 경제전문가는 "글로벌 경기가 불투명해지면서 세계 각국이 법인세 인하 등 투자 활성화에 나서고 있지만 한국은 근로시간 단축과 법인세 인상,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 등으로 기업들이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며 "정부가 하경방에서도 소극적 투자 촉진책을 마련하는 데 그칠 경우, 한국경제는 장기적 불황의 늪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예진수선임기자 jinye@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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