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객석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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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까지만 해도 밤엔 쌀쌀해 여름이 오기는 하는 거야, 볼멘 소리를 했었는데요. 며칠 낮기온이 30도 가까이 오르고 해가 진 뒤엔 시원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걸 보니 계절의 변화가 새삼 경이롭게 느껴집니다. 자연이 위대한 건 변화해야 할 때를 안다는 것, 그 때가 되면 아쉬워하거나 질척거리지 않고 '쿨'하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준다는 것입니다.

콧대 높기로 유명한, 그래서 세간의 비난의 화살을 정면으로 받고 있는 예술의전당도 선택의 기로, 변화의 교차로에 서 있는 듯합니다. 지난 3월 새로 부임한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의 파격 행보가 그것을 말해줍니다. 극단 연우무대 사무국장, 세종문화회관 산하 서울시뮤지컬단장 등을 거쳐 동양예술극장 대표를 역임한 유 사장은 영화제작과 공연예술 기획에 있어 탁월한 감각을 자랑하는 분이죠. 뮤지컬 '구름빵', '빨래'와 '광화문연가'도 유사장의 손을 거쳐 롱런하고 있는 대학로의 간판 작품들입니다. 예술의전당의 주요 사업인 클래식 음악 공연과는 다소 인연이 먼 편이지만 취임 초부터 음악계 원로들을 한 자리에 초빙해 소통하거나, 평소 예술의 전당 운영방식에 불만이 많은 사람들까지 만나는 등 예술가들을 위한 정기포럼을 준비 중이랍니다.

예술의전당이 공격의 화살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는 대표적인 이유는 이렇습니다. 명색이 국가대표 예술극장인데 자체 프로그램이나 공연기획은 별로 없고 왜 돈 버는 전시,공연 등 대관사업에만 집중하느냐는 것이지요. 오페라는 겨우 사나흘 대관해주면서 상업적인 뮤지컬은 석달 내내 대관한다는 차별 문제서부터 티켓 값이 너무 비싸 서민들이 문화예술을 향유할 기회를 늘리지 못한다는 등 제가 들어도 귀가 솔깃한 비판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주목한 건 이 비판에 대한 유 사장의 피드백이었습니다. 그는 그동안 불문율과도 같던 예술의전당 재정자립도와 국고보조율 현황이 담긴 보고서를 기자간담회에서 공개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의 전당을 국립단체인 줄 알고 있지만 실상은 지방의 시립, 도립극장과는 달리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는 유관단체일 뿐이며 공익보조율도 여타 극장에 비해 현저히 낮은 편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서울시가 운영하는 세종문화회관의 경우 보조율이 50%를 넘는데 반해 예술의 전당은 26%에 불가하다고 합니다. 예술의전당 1년 총예산은 400억원이 넘는데 정부지원은 120억원 정도이니 나머지 부족 분을 메우기 위해 상가임대와 대관사업을 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지요. 예술의전당은 현재도 약 200억원 가량의 부채를 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국가대표 극장으로서의 위상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과거 정부 시절부터 강조해 온 국민의 복지증진을 위한 문화예술정책을 펼치기에는 턱없이 열악한 예산편성인 셈입니다. 그럼 문화 선진국이라 불리는 유럽의 다른 공연장들은 어떨까요? 신임 유사장이 내놓은 자료에 의하면 영국의 복합예술공연장인 바비컨센터의 경우 국고보조율이 44.7%(269억, 16/17 시즌), 파리 국립오페라극장은 46.9%(1230억, 2016년), 시드니오페라하우스의 경우 36.7%(473억, 2017년)에 달합니다. 여기서 끝이라면 허무한 '새드엔딩'일 것이고, 이를 극복할 혁혁한 개선안을 제시할 수 있다면 예술이전당의 긍정적인 변화도 멀지 않으리라 봅니다. 달라진다는 건, 그만큼의 고통과 노력 그리고 때론 왜 일을 스스로 만드느냐는 서글픈 욕까지, 3종세트를 모두 각오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 면에서 유사장과 예술의전당은 물론, 국공립 예술단체를 짊어진 모든 책임자들의 행보가 사뭇 기대되는 대목입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변화할 때를 아는 자연처럼 우리의 문화정책에도 이제 신선한 바람이 불어야 하지 않을까요? 과거 복지정책의 쟁점은 먹고 사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는 현재는 국민들의 질 높은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넓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도 클래식 음악이나 오페라, 무용 등은 상류층의 전유물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관계기관의 관료들 인식에 팽배해 있어 정부의 지원이나 기업들의 후원이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과연 누가 잠자는 사자의 목에 방울을 걸 수 있을지, 문화계 리더들의 역할과 용기에 그 어느 때보다 주목하게 되는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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