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박정일 기자] 베트남 유통 시장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외국계 기업들은 맥을 못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과 미·중 무역전쟁 등의 여파로 중국에서 동남아로 발길을 돌리고 있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유통 사업 전략에 부정적인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1일 한국무역협회와 베트남 시장조사업체 Q&Me 등에 따르면 작년 4월부터 올해 4월까지 1년 간 베트남 현지 편의점 수는 전년보다 72% 늘어난 310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1년 만에 무려 1300여 개의 매장이 늘어난 것이다.
이 같은 성장세는 베트남 현지 유통체인들이 주도했다. 베트남 1위 민영기업인 빈 그룹의 편의점 체인인 Vinmart+의 경우 작년 4월 805개에서 올해 1465개로 660개나 증가해, 전체 증가율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그에 비해 일본 등 외국계 편의점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미니스톱의 경우 지난해까지 매장을 800개로 늘린다는 계획이었지만, 지난 4월 현재 115개로 전년 동기보다 오히려 매장 수가 1개 줄었다. 패밀리마트 역시 작년 160개에서 올해 151개로 9개나 감소했다. 세븐일레븐이 그나마 12개에서 27개로 소폭 늘었다.
아울러 프랑스 슈퍼마켓 체인인 Auchan의 경우 누적 적자를 버티지 못해 베트남 사업 철수를 결정하고 회사를 매각하기 위한 협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유통기업인 메트로 역시 2014년 태국 투자자에 매각된 이후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업계에서는 베트남 시장에서의 자국 유통업체들의 강세가 롯데의 탈 중국 전략에 큰 벽으로 작용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롯데는 2024년 완공을 목표로 호찌민 인근의 5만 ㎡ 부지에 백화점, 쇼핑몰, 호텔 등 편의시설과 주거단지를 조성하는 '에코스마트시티'를 진행 중이고,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 내년까지 롯데마트 점포를 170개 수준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신동빈 회장이 작년 말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를 만나 투자확대와 협력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 같은 관심으로 롯데의 베트남 유통 매출은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는 아직 시장 초기 단계일 뿐, 일정 수준 이상 성장하면 자국 유통업체를 선호하는 베트남 소비층의 벽에 부딪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자국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소비시장을 고려한 적극적인 현지화 전략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베트남 내 소매유통기업 매장 수. <출처=Q&Me, 한국무역협회>
작년 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이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총리공관에서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를 만나고 있다. <롯데그룹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