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같은 삶'을 꿈꾸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스크린 속 주인공이 사는 모습을 부러워한다. 영화는 말 그대로 드라마틱하다. 극적이다. 비극이나 희열을 극한까지 끌어올린다. 반전이 롤러코스터를 탄다. 긴장 때문에 손에 땀을 쥘 때도 있다. 감동을 주기도 하고 커다란 분노를 일으키기도 한다.
'현실의 삶'은 영화와 다르다. 건조하고 담담하며 쓸쓸하다. 대부분의 시간(러닝타임)이 그렇다. 행복의 순간은 짧을 뿐이다. 재미도 감동도 자주 느끼지 못하지만, 그렇게 인간은 살아간다. 만일 '영화 같은 삶'을 살다간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좋은 삶'을 살았던 것일까. 그럼 '영화 같은 정치'는 어떨까.한국의 정치는 영화보다 더 극적이고 흥미롭다는 말이 있다. 요즘도 그런 듯하다. 우리는 '영화 같은 정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세심히 다뤄야 할 경제정책 분야도 그렇다. 사람 중심 경제, 소득주도성장의 기치 하에 최저임금을 단 2년 동안 무려 30% 가까이 인상했다. 주 52시간제를 도입해 근로시간을 줄였다. 공공부문의 비정규직도 급속히 대거 정규직으로 바꾸고 있다. 국민의 생활과 기업, 자영업의 경영 여건을 그야말로 드라마틱하게 바꿨다.
2년이 흘렀다. '현실의 경제'에서는 일자리가 감소하고 소득격차가 벌어졌다. 수출과 투자가 부진한 가운데 경제성장률이 하락했다. 이를 전진을 위해 겪어야할 진통으로 생각하며 '감동'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현실을 '걱정'하며 힘겨워하는 이도 있다. 어쨌든 영화 같은 극적인 변화다. 정치외교 분야도 비슷하다. 적폐청산 드라이브 속에서 전직 대통령 2명이 모두 구속됐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정원장을 지낸 원세훈,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장이었던 남재준, 이병기, 이병호 전 원장은 전원 복역 중이거나 재판을 받고 있다. 외교도 안보도 드라마틱하다.'영화 같은 삶'은 남이 보기에는 흥미진진할 수 있어도 현실의 당사자에게는 '고역'일 가능성이 높다. '영화 같은 정치'도 마찬가지다. '좋은 정치'는 흥미 만점의 극적인 정치가 아니라 반대로 '신중함의 정치'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인의 주요한 덕목이 '신중함'이라고 생각했다. 그 프루던스(prudence)라는 단어는 신중함 외에도, 사려, 분별, 세심함, 조심, 현명함, 철, 지각, 빈틈없음의 의미를 갖고 있다. 정치는 그래야 한다는 얘기다. 에드먼드 버크도 이 고대 철인들의 생각에 동의했다. 버크가 '보수주의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인물이니 진보진영은 신중함이라는 덕목의 중요성을 외면하고 싶을지 모른다. 그래서는 진보가 '현실 세상'에서 정권을 오래 유지하기 힘들다.
'보수의 정신'을 쓴 러셀 커크는 정책은 거의 확실한 장기적 결과를 감안해 결정해야 하며, 단순히 단기적인 인기나 이점에 따라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생각처럼, 인간 사회는 복잡해서 효과적인 대책이 단순할 수 없으며, 갑작스럽고 맹렬한 개혁은 '느닷없이 깊이 째는 수술'만큼이나 위험하다. 이처럼 보수가 생각하는 진보의 약점은 '신중하지 않음'이다. 그런 약점이 진보로 하여금 목표만을 향해 질주하게 만들어, 그들이 제거하려는 악덕보다 더 나쁜 새로운 폐해를 만들어낼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커크는 생각했다. 현 집권세력인 진보에게는 입에 쓰지만 몸에는 좋은 처방이다. 집권을 꿈꾸는 보수도 행여 '영화 같은 정치'에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절제해야 함은 물론이다.
홍남기 부총리가 2일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수준이 최소화돼야 한다"는 말을 했다. 이미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달 9일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에 대해 "그 공약에 얽매여서 무조건 그 속도대로 인상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일단 신중함이 느껴져 다행이다. 영화 같은 삶을 꿈꾸면 개인의 인생이 불행해질 수 있고, 영화 같은 정치를 좇으면 국민이 불행해질 수 있다. '현실에 기반한 신중함의 정치'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좋은 삶'이 영화 같은 극적인 삶이 아니라 '현실의 분별 있는 삶'에 있듯이 '좋은 정치'는 '신중함' 속에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