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업체들 해외 생산비중 높여 주 52시간 등 노동 경직성 심화가전 수출액 전년비 17.3% 감소 보호무역·환율변동 등 환경 악화
지난달 29일 LG전자가 미국 테네시주에서 세탁기 공장 준공식을 하고 있다. <LG전자 제공>
[디지털타임스 박정일 기자] '메이드인 코리아' 가전제품이 사라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세계 1~2위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국내 주요 가전업체들이 신규 생산라인을 대부분 해외로 돌리면서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근로제 등에 따른 노동 생산성 악화와 보호무역 장벽 강화로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전통 제조업의 생산 기지 해외 이전은 한층 더 가팔라질 전망이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생활가전 사업을 맡고 있는 CE(소비자가전) 사업부문과 LG전자 H&A(홈어플라이언스&에어솔루션)의 올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7.5%, 9.9% 각각 늘어났다. 반면, 같은 기간 가정용 전자제품 수출은 4.3% 줄었다. 반대로 수입은 9.2%나 늘었다. 주요 가전업체들이 해외생산 비중을 늘리고 있어서다.
실제로 일본의 시장조사업체인 '후지키메라'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가전업체의 주요 품목별 해외 생산 비중은 냉장고가 89.7%에 달했고, 세탁기와 에어컨도 각각 85.7%와 76.5%로 대부분을 차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 결과 가전제품 수출도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의 '가정용 전기기기 생산·수출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가전제품 수출액은 약 35억7000만달러(4조2518억원)로, 전년보다 17.3%나 감소했다.
KEA는 "글로벌 가전시장의 경쟁 심화로 (수출과 국내 생산)감소세는 이어질 것"이라면서 "올해는 보호무역주의 확대, 환율 리스크 등 시장 변동성과 환경의 복잡성이 한층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주52시간 근무제와 최저임금 인상, 여기에 보호무역까지 겹치면서 이 같은 상황은 더 가속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 가전제품의 무역수지는 큰 폭의 흑자를 유지하고 있지만, 현 추세가 이어지면 점차 그 차이가 좁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요 제조업체들의 해외 투자는 급증 추세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작년 해외직접투자(송금액 기준)는 전년보다 11.6% 늘어난 497억8000만 달러(약 56조1450억원)를 기록,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SK하이닉스의 도시바메모리 지분 인수를 비롯해 디스플레이, 전장기업 등 다른 제조업의 해외 공장 증설 등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보호무역과 중국 등 후발주자와의 경쟁 등을 고려했을 때 주요 제조업의 해외 생산비중 확대는 불가피하다"며 "이는 곧 국내 제조업 일자리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최근 준공식을 한 LG전자 미국 세탁기 공장을 비롯해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 등도 미국 현지 생산라인을 증설하거나 검토 중에 있다.
재계에서는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갈수록 늘어나는 법인세 부담 등을 고려하면 기존 산업의 국내 유턴을 유인할 방법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의 1인당 노동생산성은 중국 등은 물론이고, 일본·독일·프랑스 등 선진국과 비교해도 열세다.
이 때문에 국내 기업들은 해외에서 돈을 벌어 국내에 법인세를 내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 상위 10대 기업의 총매출액 가운데 65.9%(약 458억4000억원)는 해외 매출이었고, 이들 기업이 낸 법인세는 지난해 정부의 일자리 예산에 맞먹는 18조9000억원에 이르렀다.
재계 일부에서는 갈수록 열악해지는 제조업 일자리를 다시 살리려면 신사업을 키울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노동 경쟁력과 침체한 내수 시장 등을 고려하면 해외에 있는 공장을 국내로 유턴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신산업의 기회를 열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새 공장을 짓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