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사장단 긴급소집 배경 글로벌 경영환경 점검·대책 논의 "대표기업 역할 다하겠다" 천명
지난 1일 경기도 화성사업장을 방문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가운데)이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오른쪽) 등 경영진과 함께 글로벌 경영환경 점검·대책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출처=블라인드> 삼성전자 블라인드 캡처
디지털타임스 박정일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주말에 사장단 회의를 긴급 소집하는 등 사실상 비상 경영에 나선 것은 대내·외 경영 여건이 심상치 않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최근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 가격 하락과 중국의 디스플레이 공세,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불확실성 심화,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 등 겹악재에 직면해있다.
최근 경영 행보에 한층 속도를 내고 있는 이 부회장은 특히 "지난 50년 간 혁신의 원동력은 어려울 때도 중단하지 않은 미래 투자"라며, 180조원 투자와 4만명 채용 계획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 줄 것을 당부했다.
2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지난 1일 경기 화성사업장으로 DS(반도체·디스플레이) 사장단을 소집해 4시간여 동안 집중적으로 회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말에 근무하던 직원들도 이 부회장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깜짝 놀랐다는 후문이다.
삼성전자 측은 이번 회의가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글로벌 경영환경을 점검하고 대책을 논의한 자리라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이 주말에 긴급 사장단 회의를 연 것은 작년 2월 경영복귀 이후 처음이다. 이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대규모 투자계획에 대해 차질 없는 집행을 강조했다. 실적 저하에도 흔들리지 말고 공격적인 투자를 할 것을 당부하는 재계 총수다운 '뚝심'을 보여준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던 삼성전자는 올해 주력인 반도체 가격 하락 등으로 극심한 '다운턴'에 고전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5월 말 D램(DDR4 8Gb) 고정거래가격은 3.75달러로 4월(4.00달러)에 비해 6.25% 떨어졌다. 점차 바닥에 근접하는 모습이지만, 제작년부터 이어오던 '슈퍼호황' 수준으로 다시 반등할 가능성은 미지수다. 일각에선 내년 2분기에나 D램 가격이 본격 반등할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디스플레이 사업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수요 부진과 중국의 LCD(액정표시장치) 공세 등으로 지난 1분기 적자 전환했고, 2분기에도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여기에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불확실성 지속은 삼성전자에 잠재적 위협이다. 올 1분기 기준으로 삼성전자의 미주·중국 매출 비중은 전체의 51.3%에 이른다. 화웨이 제재와 같이 양국이 서로 힘 겨루기 양상으로 난타전을 경우 삼성전자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이런 가운데서도 이 부회장이 지난해와 올해 잇따라 내놨던 천문학적인 규모의 투자·고용 계획에 대한 의지를 거듭 강조함으로써 '대한민국 대표기업'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는 게 재계 안팎의 평가다.
삼성은 오는 2021년까지 180조원(국내 130조원)을 투자해 직접 채용 4만명을 포함해 70만명의 직·간접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경제 활성화·일자리 창출 방안'을 지난해 내놓았고, 올해에는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 달성을 위해 133조원을 투자하고 1만5000명을 채용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반도체 비전 2030'도 발표했다. 이 부회장은 4월 말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열린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 같은 내용을 직접 설명했다.
재계는 이와 함께 이 부회장은 올해 들어 경영 보폭을 한층 강화하고 있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특히 5G와 시스템반도체, 자동차 전장 등 다음 성장동력을 직접 진두지휘해 경영능력을 증명받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에는 일본을 방문해 주요 통신사 경영진과 만나 5G 관련 협력 방안을 논의했고, 지난 달 22일에는 방한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도 만나 국제정세와 IT(정보기술) 산업 동향에 대해 논의하는 등 민간 외교관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이 밖에도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왕세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등도 만나 사업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등 해외 사업 확대에도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이와 관련, 김기남 부회장은 "글로벌 경영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 방향을 정하고, 동시에 수백조원대의 대규모 투자를 차질없이 추진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라며 "사장들도 공감하면서 다시한번 각오를 다졌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