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7일 영국의 테레사 메이 총리가 자리에서 물러난다.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혼돈의 정국 속에서 보수당 정권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지 약 3년 만의 일이다. 집권 기간 메이 총리의 최대 과제는 브렉시트였다. 영국의 이익을 최대한 보호하는 가운데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집권 기간 주된 임무였다.
문제는 브렉시트에 대해 영국의 국론이 여러 갈래로 분열돼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하드 브렉시트, 소프트 브렉시트, 그리고 브렉시트 재투표가 있다. EU와의 깨끗한 결별을 통해 EU의 '간섭'을 완전히 차단하고 영국의 주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 하드 브렉시트의 주장이다. 완전한 결별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충격과 비용을 수반할 것이며 상호의존성의 세계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으므로 기존 관계를 어느 정도 유지하는 편이 좋다는 게 소프트 브렉시트의 입장이다. EU 탈퇴는 경제적 재앙을 초래할 것이고 애초에 국민투표 자체가 국민 의사를 제대로 묻지 못했으니 민의를 다시 물어 잔류의 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 재투표 추진의 논리다. 지난 3년은 이들 세 입장 간 논쟁과 논박의 시간이었다.
그 와중에 영국은 작년 11월 우여곡절 끝에 EU 측과 탈퇴안에 합의했다. 세 입장 중 중간지대에 해당하는 소프트 브렉시트에 해당되는 합의안이었다. 이후 메이 총리는 금년 초까지 원안과 수정안으로 세 차례나 하원에서의 승인을 시도했으나 모두 과반수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다.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며 메이 총리는 EU를 설득해 원래 금년 3월 29일로 예정됐던 EU 탈퇴 시점을 10월 31일로 연기하는 양보를 얻어낸 다음, 5월 네 번째 수정안으로 하원 비준을 시도한다. 그러나 이 수정안은 보수당 내에서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켜 결국 메이 총리가 총리직을 사임하기에 이르게 된다. 하원에서 메이 총리가 네 번째 수정안을 설명하는 자리에 각료와 당 간부 반 이상이 아예 출석조차 하지 않았고, 보수당 평의원들은 총리의 발언 도중 자리를 떠버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수정안에 브렉시트 재투표의 가능성을 포함한 것이 당내 하드 브렉시트파(派)의 초강경 대응을 야기한 것이다.
영국 정치사에는 두 사람의 여성 총리가 있었다. 마가렛 대처, 그리고 테레사 메이다. 공교롭게도 여성 총리 두 명이 모두 '유럽'의 문제로 사임을 하게 됐다. 마가렛 대처 전 총리는 '유럽회의론'에 기반을 둔 과도한 대결적 자세가 당내 온건파의 불만을 확산시켜 물러났고, 메이 총리는 보다 단호하게 브렉시트를 추진하지 못한 것에 대한 당내 강경파의 집요한 공격으로 낙마의 불명예를 안게 됐다.
메이총리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진작 퇴출됐어야 하는 무능한 총리라는 평도 있지만, 갖은 비난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함과 유연함으로 국가의 미래를 위해 헌신한 품격 있는 정치가라는 소회를 밝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메이 총리는 영국의 정치사에서 그다지 긍정적인 획을 그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최대 과업이었던 브렉시트를 마무리 짓지 못했고 영국사회의 분열이 극도로 심화되는 것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열된 사회, 분열된 정치권 앞에는 백약이 무효였다. 어떠한 노력도, 어떠한 제안도 분열을 더 심화시키고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었다. 타협은 용납되지 않고, 양보는 패배로 간주되는 분위기 속에서 영국의 정국은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의 혼돈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무엇을 위한 분열이고, 누구를 위한 대결인가.
극도의 분열로 정국이 교착상태에 빠지고 이에 따라 정치권이 문제해결 능력을 상실하게 됐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영국은 유럽의회 선거에서 보여주고 있다. 지난 주 종료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기존 정당은 유례없는 참패를 기록했다. 당원도 없고 정강정책도 갖추지 못한 신생정당 '브렉시트당'이 1위를 차지했고, 노동당 2위, 자유민주당 3위에 이어 보수당은 4위의 득표율을 기록했을 따름이다. 1922년 보수당의 부상으로 당시 최대 정당이었던 자유당이 몰락하고 보수·노동 양당체제의 신기원을 열었던 대대적인 정계 개편을 연상케 하는 충격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극심한 국론 분열의 결과가 무엇인지 영국정치를 보며 곱씹어 봐야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