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진수 선임기자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에서 문아정이 도준의 추근거림을 피해 골목길로 들어갈 때 카메라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검은 공간을 오랜 시간 비춘다.(중략) 봉 감독은 한국의 지하실에서, 그리고 지하 취조실에서, 또한 한강의 다리 밑에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어두운 공간들이 다양한 기법을 통해 관객의 시선을 붙잡아 두도록 한다.

이같은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한보리의 논문 '봉준호 영화의 어두운 공간에 대한 연구'('영화연구' 71)는 봉 감독이 관객에게 독특한 영화 체험을 제시하는 공간이 '어두운 장소'라고 역설한다. 세계 최고 권위의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도 백수 가족이 공짜 와이파이 신호를 잡기 위해 이리저리 배회하는 곳이 반지하방이다. 공간을 치밀하게 탐구하는 봉 감독은 '봉테일'(봉준호+디테일)로 불린다. 그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평범하면서도 낯선 일상을 새롭게 발견하고, 다르게 눈뜨기 시작한다. 지하 단칸방, 옥탑방, 고시원 등 이른바 '지옥고'는 주거공간 양극화의 대명사가 된 장소들이다. 자영업 몰락과 소득· 지출의 양극화 등으로 어두운 공간이 늘어나면서 한국인의 삶이 팍팍해지고 있다. 기업 옥죄기 정책과 규제 등으로 기업과 시장이 활력을 잃은 탓이다.

올해는 한국영화 100주년이다. 마치 100주년 선물처럼 봉 감독이 칸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것을 계기로 한국 영화가 세계를 마주하면서 더 큰 성취와 도약을 이루길 바란다. 경기 침체와 막대한 재정투입에도 더 심해지는 양극화, 민생문제 해결을 내팽개친 정치권 등이 국민을 우울하게 하고 있다. 한국인에게 유일하게 희망을 던져주는 것이 '방류손'(방탄소년단·류현진·손흥민) 트리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여기에 봉준호 감독의 쾌거가 더해졌다.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 '빌보드 200'에서 1위를 차지한 방탄소년단(BTS)을 '21세기 비틀스'라고 부르는 사람도 늘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걸어다니는 중견기업과도 같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방탄소년단(BTS)의 경제적 효과'와 관련, 인기상승이 계속 이어진다면 10년(2014∼2023년)간 방탄소년단의 총 경제적 효과는 생산유발 효과 약 41조8600억원, 부가가치 유발 효과 약 14조30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출부진이 위험 수위에 달한 한국 수출 산업계도 방탄소년단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은 마치 단편영화와 같은 스토리텔링의 힘을 보여줄 뿐 아니라 사회적 메시지도 담고 있다. 기존 이별·사랑 노래의 범주에서 벗어난 노래들이다. 수출 산업계도 시장과 기업을 함께 혁신하면서 새로운 틀을 만들어내야 한다. 방탄소년단은 뉴미디어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면서 변방에서 중심으로 인기의 축을 서서히 옮겨갔다. 수출기업들도 빅데이터와 뉴미디어 플랫폼 등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신흥국에서 성공한 뒤 이를 선진국으로 확산시키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한국처럼 규제 장벽이 높은 나라에서는 산업계의 방탄소년단이나 봉준호 감독을 기대하기 힘들다. 지난해 11월 주한 유럽상공회의소가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한 갈라파고스 규제국가"라고 지적했지만 관료사회는 요지부동이다. 스타트업은 물론 기존의 기업들도 투자하려는 의지가 흔들리고 무너지고 있다. 투자가 이렇게 부진해서는 한국이 수년 안에 자율주행차로 대표되는 신모빌리티 산업이나 공유산업 분야의 선두권 대열에서 완전히 탈락할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 부처들이 힘을 합쳐서 칸막이 규제부터 걷어내야 한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과 '방탄소년단 현상'의 지구적 확산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문화콘텐츠산업의 잠재력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문화는 명사가 아닌 동사다. 실천이 중요하다. 정부가 한류를 신성장동력 산업으로 적극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지만, 관계부처를 아우르는 종합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정보문화 인프라를 활용한 생태계 구축과 수익구조 다각화, 창의적 마케팅, 파생 문화 상품 개발 등 입체적 문화 콘텐츠 전략이 절실하다. 방탄소년단이나 봉준호 감독이 시도한 것처럼 '발상의 전환'을 통해 한류산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예진수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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