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ICD-11)을 의결하면서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 항목을 포함시킬 가능성이 커졌다. WHO의 결정은 권고사항이며 실제 적용 여부는 각 국가의 고유 권한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 게임업계는 게임이 정신장애를 유발한다는 근거가 없고 대표 증상으로 제시되는 우울, 불안장애의 경우 공존장애 비율이 높아 보다 명확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반대로 일부 의료계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면 당장의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질병으로 우선 분류해야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문제는 확실한 '해답'을 찾기 위해 정확한 원인 파악이 우선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배제한 채 극히 일부의 현상이라는 '단서'를 들어 성급하게 결론부터 내리려는 점이다. 최근에는 다수 매체를 통해 해당 이슈가 지속 노출되며 기존 게임업계와 의료계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집중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는 게임이 질병인지 아닌지에 대한 갑론을박도 펼쳐지고 있다.
우리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주제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사회적인 합의와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실제로 협의가 부족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정책을 추진하는 경우 사회적인 반발을 일으키는 사례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는 '탄소세'가 있다.
탄소세는 석유, 석탄 등 각종 화석에너지 사용량에 따라 부과되는 세금으로, 지난 1991년 12월 유럽공동체 에너지환경 각료회의에서 도입 방침을 합의했으나 제도 적용을 위한 세계 각국 정책은 현재까지도 강경한 반대에 의해 무산, 혹은 늦춰지는 추세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해 탄소세 정책의 일환으로 유류세 인상을 발표했다. 하지만 해당 정책은 이른바 '노란 조끼' 시위대의 반발로 연기될 수밖에 없었다.'노란 조끼' 시위란 집회 참가자들이 차에 의무적으로 비치하는 사고 방지용 형광 노란 조끼를 입고 나온 데서 붙여진 명칭이다. 대중교통의 혜택을 받지 못한 도시 외곽 출퇴근자와 운수업에 종사하는 트럭?택시 운전자를 중심으로 시작됐고 프랑스 전역까지 확산되며 걷잡을 수 없는 영향력을 발휘한 바 있다.
이외에 미국, 캐나다, 호주 등 국가들도 지난 수년 간 관련 정책을 시도했으나 사회와 소통이 부족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탄소세 도입과 그를 둘러싼 갈등 상황은 사회 합의 없이 정책을 추진할 경우 예상되는 '선례'로서 참고할 만하다.
게임이용장애 논의는 과학적인 연구 결과가 뒷받침되지 못하면서도 그 동안 일방향적으로만 진행돼왔으며, '정신질환'이라는 편향된 결과로 이어졌다. 이와 관련 세계 사회의 강력한 반발과 잡음이 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보건복지부는 게임산업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의 명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치 우리나라가 공식적으로 게임이용장애 질병 코드 등재를 지지하는 것처럼 발언했다. 안건이 통과된 직후에는 국내 적용을 위해 각계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한다고 즉각 발표했다.
해당 협의체는 게임이용장애가 실존한다는 것을 '전제'로 추진된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증명되지 않은 명제로, 게임업계를 비롯한 각국 전문가 집단에서도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단순히 WHO의 결정을 '전가의 보도' 삼아 자리에 앉으라는 것은 '협의'가 아닌 '협박'에 가깝다. 공감 받지 못하는 정책은 부작용과 혼란을 초래한다. 질병을 논하기에 앞서 게임 콘텐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회 합의부터 이끌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