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달여 사이 원화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주요 신흥국 가운데 정국 불안에 휩싸인 터키 리라화와 아르헨티나 페소화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낙폭이다.
12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지난달 1일부터 이달 8일까지 한 달 남짓 기간 달러화에 견준 원화 가치는 2.9%(달러당 1135.1원→1169.4원) 떨어졌다. 경제 규모가 큰 주요 신흥국 10개 통화 가운데 같은 기간 달러화에 견준 화폐가치 하락이 원화보다 컸던 통화는 터키 리라화(-9.0%)와 아르헨티나 페소화(-3.7%) 정도였다.
미국과의 무역분쟁 당사국인 중국의 위안화도 약세를 보이긴 했지만, 달러화 대비 하락률이 1.0% 수준에 머물렀다.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감 약화로 달러화가 강세로 돌아서면서 신흥국 통화가 대체로 약세를 보인 점을 고려하더라도 최근 들어 원화의 가치 하락이 유독 두드러졌다.
터키와 아르헨티나는 한국보다 통화가치 하락이 쿠지만 미국과의 외교 갈등이나 국내 정치 불안 등을 이유로 경제에 위기감이 고조되는 국가들이어서 한국 경제 상황과 직접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실제로 터키와 아르헨티나는 지난 3월 물가상승률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9.7%, 54.7%를 나타낼 정도로 고물가를 보이면서 통화 약세를 부추기는 상황이었다.
반면 한국은 2월 이후 석 달째 0%대 물가상승률을 보여 오히려 저물가를 걱정해야 할 상황인데도 통화가치는 급격한 하락을 면치 못했다.
최근 원화 약세는 글로벌 강달러 기조 속에 외국인 투자자의 배당금 본국 송금에 따른 달러 환전 수요, 1분기 경제성장률 악화, 미·중 무역분쟁 불확실성 재부각 이슈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그러나 반도체 호황에 기대어 버텨오던 한국 경제가 반도체 경기가 식자 약한 기초체력의 실체를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외국인들의 투자 유인도 그만큼 떨어졌다"며 "반도체 호황이 그동안 수출의 버팀목이 돼왔지만, 반도체 경기가 나빠지면서 그 영향이 환율에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심화영기자 dorothy@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