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경제적 지원 미온적 태도 美 경제 · 군사 압박 강화 영향 한도이상 우라늄 농축 시작할듯
이란이 지난 2015년 체결한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의무이행 수준을 점차 줄이겠다는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알려져 중동정세가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미국이 대(對) 이란 제재를 차례로 복원하고, 이란산 원유 수입 금지의 예외 조치를 중단한 데 이어 항공모함과 폭격기 파견을 밝히며 경제·군사적 압박 수위를 한층 끌어올린 것이 도화선이 됐다. 이에 맞서 이란도 미국의 합의 탈퇴 1주년을 맞아 마찬가지로 핵합의 의무이행을 줄이겠다고 선언하며, 핵 활동을 재개할 가능성이 제기돼 핵위기 재발 우려를 낳고 있다.
7일(현지시간) 이란 국영 IRNA 통신은 이란 외무부가 이란 핵합의 당사국 5개국 특사들에게 2015년 핵합의에 대한 '축소된 공언'을 통보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축소된 공언'은 핵합의 사항 가운데 일부를 파기하는 것을 말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8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서한을 발송할 계획이다.
이란 ISNA통신도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로하니 대통령의 대응은 핵합의 26조와 36조의 틀 안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들 조항은 이란을 비롯한 핵합의 서명국(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독일)이 상대방이 핵합의를 위반했다고 판단했을 때 이의를 제기하고 최종 결론을 내는 절차를 담았다. 핵합의의 기본 골격은 이란이 핵프로그램을 감축·동결하는 조건으로 미국, 유럽연합(EU), 유엔의 제재를 해제하는 '행동대 행동' 원칙으로 짜였다.
미국이 지난해 8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대이란 제재를 복원한 데다 3일에는 핵합의에서 허용한 이란의 핵활동을 지원하는 외국의 행위조차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이란으로선 핵합의의 이의제기 조항을 적용할 수 있는 형식적, 실질적 조건이 갖춰진 셈이다.
이란 언론은 정부가 동결한 원심분리기 생산 등 핵활동을 일부 재개하고, 한도 이상의 우라늄 농축을 시작해 국제 사회에 경고 메시지를 보낼 것으로 전망했다.
IRNA통신은 로하니 대통령이 미국을 뺀 나머지 서명국에 "이란은 최대한 인내했으나 상대방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이에 상응해 핵합의에서 정한 의무를 이행하는 수준을 점차 줄이겠다"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낼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란의 이런 움직임은 미국의 핵합의 탈퇴 뒤 경제적 지원을 유지하겠다고 이란에 굳게 약속한 유럽 핵합의 서명국(영·프·독)과 EU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것이란 점이 확실해졌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유럽 서명국과 EU는 이란의 경제적 이득을 보장하기 위해 미국의 제재를 우회해 이란과 유럽 기업이 교역할 수 있는 금융전담회사 '인스텍스'를 올 1월 설립했지만 넉달간 공전 상태다. 이란이 수차례 "유럽은 말로만 핵합의를 유지한다고 하지말고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며 유럽에 요구했으나 유럽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오히려 유럽 측은 핵합의와 관련없는 이란의 탄도미사일 개발과 돈세탁, 테러자금 지원 등을 문제 삼아 이란의 반발을 샀다.
이 때문에 이란 내에선 핵합의 뿐만 아니라 핵확산금지조약(NPT)도 탈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로하니 정부는 2015년 서방과 핵협상을 타결했지만 고조하는 국내 비판 여론을 넘어서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급박히 돌아가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독일 방문 일정을 갑자기 취소하고 7일 오후 이라크 바그다드를 전격 방문했다.
폼페이오의 이라크 방문은 미국이 이란을 압박하기 위해 항공모함과 폭격기를 중동 지역에 배치하기로 발표한 지 이틀 만에 이뤄진 것으로, 이란의 선제 도발이나 핵 합의 탈퇴 선언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