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시민권 포기한 과학자들 뭉쳐
경제발전·국민 삶의 질 향상 기여
UAE·요르단에는 원자로 수출도

순수 국내 기술로 설계·개발한 '한국표준형원전'인 신고리 3호기.
순수 국내 기술로 설계·개발한 '한국표준형원전'인 신고리 3호기.


한국표준형원전의 원자로 계통 모습.
한국표준형원전의 원자로 계통 모습.


'에너지 자립' 이끈 한국원자력연구원 60년

원전 불모지인 한국에 원자력 R&D(연구개발) 씨앗을 뿌린 지 60주년이 됐다. 6·25 전쟁의 폐허 속에서 '제3의 불'로 불리는 원자력의 불씨를 틔워 '원자력 기술자립'을 이룬데 이어 원자력 기술수출의 성공신화를 써가며 지난 60년 동안 우리나라는 '세계 원자력 강국 코리아'로 발돋움 했다.

비록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탈원전을 포함한 국가 에너지 전환정책에 따라 원자력의 역할과 위상이 급격히 위축되고는 있지만, 국가 에너지 수급과 국가 경제발전에서 원자력이 차지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9일 창립 60주년을 맞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은 국내 원자력 전문 연구기관으로 괄목할 만한 연구성과를 창출하며 국내 원자력 연구개발 및 원자력 산업육성의 핵심 거점 역할을 해 왔다.

지난 60년 동안 중수로 및 경수로 핵연료 국산화를 시작으로 원자력 기술자립의 요체인 '한국표준형원전' 개발, 다목적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 자력 설계 및 운영, 요르단 연구용 원자로 수출, 소형 원자로 '스마트' 사우디 수출추진 등 원자력 연구개발을 통해 국가 경제발전과 국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해 왔다.

◇미국 시민권 포기한 과학자들, 중수로·경수로 핵연료 국산화= 원자력연은 1980년대 들어 원자력 기술자립을 위한 본격적인 연구개발을 시작했다. 그 첫 프로젝트는 '핵연료 국산화'였다. 국내 연구진은 1983년 가동 예정이었던 월성 1호기에 쓰일 '중수로 핵연료' 국산화에 뛰어 들었고, 당시 해외에서 활동하던 한인 과학자들이 미국 시민권까지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와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1984년 캐나다 핵연료와 동등한 성능을 지닌 국산 중수로 핵연료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연구진은 독일 기업과 공동설계를 통해 1988년 경수로 핵연료 국산화도 완성했다. 이듬해인 1989년에는 고리1호, 1990년에는 고리 2호기에 국산 경수로 핵연료를 장전해 국내에서 가동중인 중수로와 경수로 원전 모두에 우리 손으로 만든 핵연료를 공급, 완전한 핵연료 기술자립을 이뤘다.

◇원전 기술자립 요체 '한국표준형원전' 개발= 원자력연은 1990년대 들어서는 원자로를 직접 설계하고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된다. 원전의 두뇌에 해당하는 핵심 기술인 원자로 계통 설계자립에 나선 것이다. 독자 개발이 어려운 상황에서 미국 컴버스천엔지니어링(CE)사를 공동설계 기업으로 선정하고, 1986년 50명의 연구진을 미국에 파견을 보내 밤낮없이 설계에 매달린 끝에 1988년 영광 3,4호기 원자로 계통 설계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어 '한국표준형원전(OPR100)'인 울진 3,4호기를 단독 설계하고, 1998년과 1999년에 각각 준공해 진정한 원자력 기술자립을 달성했다. 앞서 원자력연은 1985년 다목적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 자력설계 및 건조에 착수해 10년 만인 1995년 열출력 30㎿급 하나로를 완공하기도 했다.

◇원자로 '수출 시대' 개막=2000년대 들어 원자력연은 한국표준형원전 개발과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차세대 원자로 'APR-1400'을 개발, 2007년 착공한 신고리 3,4호기에 적용했다. APR-1400은 1400㎿급 가압 경수로로 2009년 우리나라가 원전 최초로 수출에 성공한 UAE(아랍에미리트) 원전모델 이기도 하다.

원자력연은 같은 해 요르단에 연구용 원자로를 처음 수출해 8년 간의 공사와 시운전을 거쳐 2017년 요르단에 인도해 성공적으로 마쳤다. 또한 네덜란드 연구용 원자로 개선사업을 수주한 데 이어 2015년에는 국내 기술로 100% 만든 소형 원자로 '스마트(SMART)'를 사우디아라비아에 공동 파트너십 형태로 수출하는 '건설전설계(PPE) 계약'을 맺어 원자력 수출 시대를 활짝 열었다.

김시환 전 원자력연 부소장은 "지난 60년 간의 눈부신 성과는 당시 개도국의 어려운 여건과 자원 부족을 극복하며 이뤄낸 것"이라며 "어떤 환경 속에서도 국민들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연구자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대전=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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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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