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내달 '게임장애' 채택 업계 "과학적인 근거 불충분" 국내 게임단체·기관 큰 반발 해외 "SNS 중독 질병" 주장
세계보건기구(WHO)가 조만간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국내 게임 단체 및 기관의 반발이 본격화 되고 있다.
7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WHO는 오는 5월 20~2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정기총회를 열고, 게임중독을 '게임장애(gaming disorder)'라는 명칭을 붙여 질병으로 등재한 국제질병분류 11판(ICD-11)을 채택한다. ICD-11의 효력은 오는 2022년부터 발생하며, ICD를 기반으로 하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도 이에 맞춰 개정될 전망이다. KCD는 2020년 개정을 앞두고 있다.
게임중독이 질병으로 분류될 경우, 당장 게임업계 전반에 큰 피해가 우려된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산업이 위축되는 것은 물론, 이미지 추락으로 인재 수급에도 어려움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게임, 질병 규정 과학적 근거 불충분"…수조원 매출 위축 우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 6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2019 게임문화포럼'을 통해 게임장애에 대한 의학적 근거가 충분치 않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제시했다.
크리스토퍼 퍼거슨 미국 스테트슨대 심리학과 교수는 기조연설을 통해 "사람들은 흥미롭게 느끼는 활동들을 계속 하려는 현상을 보이는데, 이중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여기는 것은 매우 파편적인 해석"이라며 "과몰입은 어떤 영역에서든 나올 수 있다. 춤, 낚시같은 행동에 과몰입한다고 이를 정신질환으로 여기고 치료의 대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게임중독이 그 자체로 질병이 아닌 다른 심리적 요인으로 인한 하나의 증상일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콘진을 비롯해 국내 게임 관련 협단체 및 기관들은 WHO의 게임중독 질병 지정을 막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질병코드 지정으로 인한 게임산업 위축 규모가 수조원대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서울대 산업공학과 이덕주 교수 연구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에 제출한 '게임 과몰입 정책변화에 따른 게임산업의 경제적 효과 추정 보고서'를 통해 게임중독 질병코드화가 2023년부터 3년간 국내 게임산업에 수조원에 이르는 피해를 줄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국게임산업협회를 비롯한 인터넷·게임 관련 8개 협회들도 지난 2월 성명을 내고 "의학계나 심리학계에서도 게임장애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내린 바 없다"면서 "20억명이 일상적으로 즐기는 문화콘텐츠인 게임을 '질병'으로 분류할 수 있는지 검토가 필요하다"며 질병 분류를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앞서 협회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지난 1월 WHO 집행위원회 회의해 참가해 게임장애 코드 등재에 대해 우려한다는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지만, WHO는 오는 5월 게임장애를 포함한 ICD-11 채택에 대한 논의를 원안대로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도 "게임중독 질병으로 분류"…해외선 "SNS 중독 질병" 주장= 보건복지부는 ICD-11 채택시 국내 게임중독 질병코드 지정을 서두르겠다는 입장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WHO에서 최종적으로 게임장애를 질병화하는 것으로 확정하면 이를 바로 받아들이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복지부 산하 연구기관인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단은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인터넷·게임중독 해결형 정신건강기술개발에 대해 연구를 지원했다.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단이 5년단 총 6개 관련 연구에 지원한 금액은 총 43억2800만원에 달한다.
복지부의 이같은 입장은 문체부의 입장과 상반되는 것으로, 게임중독 질병코드 지정이 코 앞에 다가왔음에도 부처간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 가운데 해외에서는 질병코드 지정과 관련한 논란이 SNS(사회관계망서비스) 까지 확대되고 있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영국 의원들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SNS에 중독되는 현상을 질병의 하나로 분류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지난 3월 발표했다. 이들은 "안전하고 건전하게 인터넷을 사용하도록 젊은 층을 보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정부가 SNS 중독을 의학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지 파악하기 위한 연구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