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샌드박스 회피창구화되고 있어 의미 가지려면 과감한 탈규제 필요 先허용 後정비 통해 신사업 지원을 공무원이 규제 필요성 입증 방식돼야"
[디지털타임스 김아름 기자] "규제 샌드박스는 신산업에 대한 규제를 풀어 주자는 당초 취지와 달리 회피창구화하고 있습니다. 샌드박스가 의미를 가지려면 과감한 탈규제 정책을 통해 규제 그물망을 선진국 수준으로 걷어내야 합니다."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조사본부장(사진)은 4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코리아 리더스포럼에서 규제 개혁을 위해 탄생한 샌드박스 제도가 오히려 또다른 규제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규제 이슈가 샌드박스로 쏠리는 것을 방지하고 샌드박스 경로로 분류된 사안들에 대해서는 '선허용 후정비'를 허용해 벤처기업들의 신사업 진출을 도와야 한다는 설명이다.
규제 샌드박스는 어린이들이 안전하고 자유롭게 놀 수 있는 모래놀이터처럼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출시될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유예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기술과 산업의 급변을 법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점을 보완해 준다는 취지다.
문제는 규제를 줄이기 위해 만든 규제 샌드박스가 오히려 규제 완화의 회피창구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이다.
"경쟁국에 없는 불합리한 규제의 폐지를 요구했을 때 샌드박스로 넘기는 경향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규제 폐지는 부담이 크지만 샌드박스로 넘기면 부담감이 낮은 데다가 실적도 올릴 수 있기 때문이죠. 세계 100대 사업모델 중 절반이 넘는 57개 사업이 국내에서는 불가능하거나 제한적으로만 추진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한시적 규제 유예가 해결책이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사업을 본격적인 궤도에 올리기 전에 샌드박스를 통해 사업모델이 노출됨으로써 규제가 없는 경쟁 기업들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샌드박스를 거치는 동안 선점효과를 상실한다는 것이다.
"샌드박스의 당초 취지는 네거티브 규제(우선 사업을 허용한 후 문제가 나타날 경우 정비하는 방식)를 적용하자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사업 모델을 건별로 승인받아야 하는 포지티브 규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또한 승인 과정에서 사업모델이 훼손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 스마트체온계와 앱 기반 영유아 건강관리 서비스를 결합한 사업이 원격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판단에 샌드박스를 적용받지 못한 경우가 있다. 국내에서는 단순 내원안내 수준의 서비스만 제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규제를 완화해야 할 필요성을 기업이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규제를 해야 할 필요성을 공무원이 입증하는 방식이 돼야 합니다. 미국의 경우 신사업이 나타나면 한국처럼 규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 보급률이 16%에 도달하면 사후 규제에 나섭니다. 중국 역시 한국에서는 규제로 사업이 불가능한 원격의료, 빅데이터 활용, 공유차량 서비스 등이 규제 없이 허용되고 있습니다. 샌드박스 역시 매 건을 평가해 선별 허용하는 형태에서 등록 후 신속하게 사업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줘야 합니다."
이 본부장은 규제 샌드박스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규제 그물망 자체를 걷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과감한 탈규제와 규제 샌드박스를 병행해 '선 허용 후 규제' 방식을 정착시키는 것이 신사업 육성의 지름길이라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