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연 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
장준연 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
장준연 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
올해 정부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이 사상 처음으로 20조원을 넘어 작년 대비 3.7% 증가한 20조3997억원으로 책정되었다. 최근 3년간 1% 내외의 증가율을 보였던 것에 비해 매우 고무적인 예산 증대이다. 이번 R&D 예산 확대의 배경에는 산업기술 개발과 제조업 지원을 통해 경제를 회복하고자 하는 현 정부의 의지가 깊게 자리잡고 있다. 실제로 수년간 감소 추세에 있던 산업기술 관련 R&D 예산이 올해 4년 만에 증액 편성된 것을 보아도 2019년 정부지출의 핵심 분야 중 하나인 경제활력 제고가 R&D 예산 확대의 주된 이유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지난 30여 년간 정부의 적극적인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는 여러 산업 분야의 기술력 확보로 이어져 우리 국가 경제성장의 훌륭한 밑거름이 되었다. 이번 예산안의 세부 내용에도 초연결 지능화, 자율주행, 수소경제와 같은 경제발전의 원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내용들이 포함돼 있어 경제 및 산업계 전반에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불러 일으킬 것이 기대된다. 뿐만 아니라 미세먼지 대응과 같은 재난 및 안전 분야에 대한 R&D 예산 확대는 국민들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국가 경제발전의 핵심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는 반도체 산업과 관련한 R&D 예산이 아직 확보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산업부와 과기정통부는 2017년부터 2조5000억원 규모의 차세대 반도체 R&D 사업을 기획하였고, 2018년 예비타당성(예타) 조사 통과를 추진하였다. 그러나 예타 제도 개선 등의 이유로 1차 기술성 평가도 통과하지 못하고 기획이 좌절되고 말았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반도체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은 주로 반도체나 스마트폰을 생산하는 대기업이 주도할 것이라는 기대가 지배적이었다. 이에 비해 중국 정부는 향후 10년 동안 200조원 규모의 예산을 반도체 R&D에 투자해 현재 15%에 머물고 있는 반도체 자급율을 70%대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처럼 후발주자인 중국이 국가적 차원에서 대대적인 R&D 투자를 진행해 빠르게 기술력 추격을 해오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반도체 산업에 대한 투자를 시장에만 맡겨두는 것은 국가적 경쟁력 손실과 직결될 것이란 우려감을 높인다.

또한, 현재 반도체 산업이 '실리콘 이후'(Beyond Si)의 혁신적인 반도체 기술을 필요로 한다는 것 역시 국가적 차원의 반도체 R&D 지원이 절실한 이유이다. 실리콘 반도체의 크기 축소가 거의 한계에 도달하고 있는 지금, 반도체 기술 개발은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상황이다. 따라서 이러한 급변의 시기에 반도체 강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차세대 반도체 사업을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이끌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다행히 산·학·연과의 꾸준한 협력을 통해 산업부와 과기정통부는 차세대 반도체 R&D 사업 예비타당성 조사 통과를 재추진하였고, 이번 예비타당성 조사는 성공적으로 통과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정부의 반도체 R&D 투자가 거의 전무했던 지난 10년간의 상황과 비교해 볼 때, 향후 10년간 약 2조5000억원 규모로 제안된 이번 사업은 우리의 반도체 기술력을 새롭게 정비하고, 미래 기술경쟁에 대비할 수 있는 중요한 밑바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반도체 강국의 타이틀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 경쟁은 누가 먼저 인공지능이나 초전력 반도체, 반도체 센서와 같은 차세대 반도체 분야의 원천 기술을 확보하느냐에 따라 판가름 날 것이다. 따라서 차세대 반도체 산업의 첫 장을 우리나라의 반도체 기술로 쓰기 위해서는 메모리 반도체 강국이라는 타성에서 벗어나 반도체 R&D 사업에 대한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고, 기술 경쟁과 인재양성을 위해 적극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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