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량자산 매각·차입상환 요구 유동성·시장신뢰 회복 판단땐 1년간 경영개선 약정 연장키로 "경영상황 정상화 역부족" 평가도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채권단, 고강도 자구계획 압박
[디지털타임스 김양혁 기자] 박삼구 회장(사진)이 경영 일선에서 전격 사퇴했지만,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경영 정상화는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채권단이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우량자산 매각과 시장차입 상환계획을 요구할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일각에선 박 회장의 용퇴에 노림수가 숨어있다거나, 사재출연 압박을 피하려고 '선수'를 친 것으로 의심된다는 견해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31일 재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KDB산업은행을 비롯한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은 아시아나 측이 마련할 자구계획에 이 같은 방안이 담겨야 한다는 입장을 정했다. 이를 통해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하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이번 주 중 1년 만기의 경영개선약정(MOU)을 연장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항공운송에 필요하지 않은 우량자산을 매각하는 등 신용등급을 유지하기 위한 자구노력이 핵심"이라며 "그래야 채권단도 아시아나에 신뢰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박삼구 회장 퇴진으로는 불충분하다"며 "장기적인 경영계획, 즉 아시아나를 앞으로 어떻게 바꿔나가겠다는 비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선결 과제인 우량자산 매각 대상으로는 금호리조트에어서울·에어부산·아시아나개발·아시아나에어포트·아시아나IDT 등의 지분과 골프장·아시아나타운 등 부동산이 꼽힌다.
채권단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이나 금호타이어 등과 달리 아시아나는 금융권에서 빌린 돈보다 시장에서 조달한 자금이 훨씬 많다"며 "신용등급 하락으로 유동성 위기가 한꺼번에 몰리기 전에 강도 높은 자구계획이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시아나의 총 차입금은 지난해 말 기준 3조4400억원이고, 이 가운데 1년 안에 갚아야 할 단기차입금은 1조3200억원이다. 차입금은 금융리스 부채(41%)와 ABS(36%)가 대부분이고, 금융기관 차입금은 14% 정도다.
이에 대해 아시아나 측은 국적항공사이자 기간산업인 점을 고려해 채권단이 '대승적 결단'을 내려주기를 바란다는 분위기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박 전 회장의 사재출연이 거론되고 있는 것에 대해 "대부분 내놓은 것으로 안다"며 "신규 지원을 바라는 게 아니다. 현재의 금융지원을 유지하는 MOU를 다시 맺어 신용등급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주면 유동성 문제는 자력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박삼구 전 회장은 작년 채권단과 맺은 MOU에 따라 지난 1년간 유동성 확보를 위해 돈일 될 만한 것들을 모두 팔아치웠다. CJ대한통운 주식과 그룹의 상징인 광화문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옥 등을 매각했고, 영구채 발행 등으로 자본을 확충했다. 작년 12월에는 산업은행에 갚아야 할 부채 700억원 만기를 연장하기 위해 자신이 보유 중이던 금호고속 등의 지분을 산업은행에 담보로 제공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비상장회사였던 아시아나IDT, 에어부산의 IPO(기업공개)로 전환사채 발행으로도 자본을 늘리며 실탄 마련에 분주히 나섰다.
일각에선 이 같은 노력에도 악화한 아시아나항공의 경영 상황을 정상화하는 데 역부족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작년 별도 기준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은 814.9%에 달하며, 자본잠식률은 26%다. 이에 따라 최악의 경우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결국 핵심 자산인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한편, 채권단은 현재 아시아나항공에 대해 꼼꼼히 실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아시아나가 채권단에 제출할 자구계획을 물 밑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자구계획이 채권단 승인을 받아야 이번 주 만료되는 MOU를 다시 맺고, 자율협약이나 워크아웃을 피할 수 있다. 만약 채권단이 MOU 연장을 거부하면 자율협약이나 워크아웃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채권단 내부에선 산은이 금호타이어, 대우건설, KDB생명(옛 금호생명) 등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관련된 부실기업을 잔뜩 떠안은 데다가, 지난해 금호타이어 매각 과정에서 박 회장과 빚은 갈등으로 '감정의 앙금'도 적지 않아 섣불리 결과를 예단할 수 없다는 기류도 감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