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미국 통신법 개정은 본격적인 방송·통신융합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었다. 오랫동안 금지되어 왔던 방송과 통신 겸영이 허용되면서 사업자간 인수합병이 본격화된 것이다.물론 사상 최대의 M&A로 일컬어졌던 'AOL-타임워너' 간 인수합병은 실패로 끝났지만, 이후 방송·통신시장에서의 인수합병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06년 미국에서는 통신법 개정에 대한 평가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외형적으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케이블TV 시장을 방송과 통신 각각 두 사업자들의 과점 형태로 재편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소유구조 변화가 시장에 미친 영향에 대한 평가도 함께 나왔다. 방송·통신사업자간 M&A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유료방송 가격이 하락하면서 일시적으로 소비자 후생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몇 개 사업자로 시장이 정착된 이후에는 가격이 급상승해 독점의 폐해가 우려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사업자간 M&A로 인해 방송 시장에서 '경쟁'이 도리어 위축되고 이로 인해 소비자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미국정부가 지향했던 방송·통신시장에서의 '경쟁 보호정책'과 완전히 상충되는 결과다. 이후 미국에서의 인수·합병 심사가 전보다 엄격해진 측면도 있다. 특히 방송·통신·콘텐츠 시장에서 1위 사업자간 M&A에 대해서는 더욱 부정적이다. 실제 2015년 '컴캐스트'와 'TWC(Time Warner Cable)'간 M&A는 높은 시장점유율로 공정경쟁을 위축시킬 있다는 비판으로 중단된 바 있다. 최근 승인받은 'AT&T'의 '타임워너' 인수합병은 무려 2년 이상 소요되었다. 물론 OTT와 경쟁을 고려하여 1위 사업자가 아닌 경우 비교적 무난히 승인되는 추세다. '경쟁 확보'라는 분명한 원칙에 입각해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역시 방송·통신시장 모두 사실상 포화상태에 근접해지면서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가입자를 늘리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하지만 규모의 경제에 크게 의존하는 미디어사업 특성상 생존을 위한 M&A가 모색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최근 'LG U+'의 'CJ헬로비젼' 인수합병 발표 이후 다른 사업자들도 인수합병을 추진 하거나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쩌면 그동안 이례적이었던 우리 미디어 시장에서 M&A가 봇물 터지듯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협소한 우리 방송시장 구조에서 플랫폼사업자간 인수합병은 콘텐츠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방송시장의 주 재원을 홈쇼핑 송출수수료, 지상파 재송신대가 같은 B2B 수익모델 등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상태에서 콘텐츠 사업자들 역시 몸집을 늘려 협상력을 높이려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방송시장에서의 M&A는 자칫 시장을 왜곡시킬 수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미디어사업 인수합병에 대한 명확한 정책목표와 평가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없다. '공익'이라는 매우 추상적인 이념 아래 많은 부분들을 평가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실효성 있는 심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인수합병과 관련된 규제기구가 방송통신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공정거래위원회로 분산되어 있는 것도 비효율적이고, 이들 간에 명확한 역할분담도 이루어져있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로 인해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관련사업자들 조차 심사의 합리성에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고, 결국 정부 결정에 대한 규제순응성도 담보받을 수 없게 된다. 인수합병 심사과정에서 사업자간 갈등이 증폭되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실제로 2016년 'SK텔레콤'의 'CJ헬로비젼' 인수합병 추진과정에서 거의 모든 방송사업자들이 이해득실을 놓고 총력전을 벌였던 적이 있다.
한마디로 미디어 인수합병에 대한 정부의 분명한 정책목표와 투명한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심사주체들이 인수합병 심사에 있어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지를 밝히고 심사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능하다면 공개청문회 같은 것도 시도해볼 만하다. 이러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 방송시장에서의 인수합병이 선순환 구조가 구축되어 있지 못한 우리 유료방송시장을 개선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런 맥락에서 인수합병에 대한 정책목표로 '사업자간 거래 공정성 확보'와 '유효경쟁 촉진' 같은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