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김양혁 기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7일 그룹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 정기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3분의 2룰'에 발목이 잡혀 사내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이에 따라 앞으로 아들인 조원태 사장이 대한항공을 이끌 것으로 관측된다.

20년간 조직을 진두지휘하던 조 회장이 경영권 수성에 실패하면서 대한항공은 충격에 빠졌다. 주총 직후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 않았지만, 내부에서는 "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며 당황한 모습이 역력하다. 특히 조 회장이 자발적인 결단이 아니라 주주들의 결정에 의해 내몰리듯 사내이사와 대표이사에서 물러나게 됐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내부에서는 조 회장이 대표이사직을 잃게 되면서 경영에 차질을 빚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당장 오는 6월 대한항공 주관으로 서울에서 처음 열리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차총회 개최가 걱정이다. IATA는 현재 전 세계 120개국 287개 민간 항공사들이 회원으로 가입한 항공 관련 국제 협력 기구다. 총회 의장은 주관항공사 최고경영자(CEO)가 맡는 관례에 따라 조 회장이 의장 자리에 앉아야 하지만,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고민이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관계자는 "오늘 주총 결정에 따라 조 회장의 거취와 대한항공 경영 등 관련 사항을 절차를 밟아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조 회장 장남인 조원태 사장이 여전히 대표이사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고, 조 회장도 주식 지분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어 조 회장의 영향력이 완전히 배제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의 임기는 오는 2021년 3월 26일까지다. 오는 29일 열리는 한진칼 주총에서는 조 회장 측근으로 분류되는 석태수 대표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이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룹 지주회사 격인 한진칼과 그룹 핵심 계열인 대한항공을 조 회장 측근과 아들이 경영권을 쥐고 있는 상황이라 당장 위상이 흔들릴 가능성은 낮다.

업계에서는 조 회장이 무리해서 사내이사 연임을 밀어붙인 것은 조 사장으로의 경영승계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작업이었던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조 회장은 연임 추진 과정에서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의 반대와 일부에서 예상했던 국민연금의 반대와 함께 여론의 역풍을 맞아오면서도 강행했다. 1949년생인 조 회장이 올해 만 70세로 고령에 접어들었다는 점에서 경영승계를 늦출 수 없다는 절박함이 부메랑이 된 셈이다.

이번 사태로 조 회장이 다시 사내이사로 재선임되지 않는 한 대한항공 이사회에 참여할 수 없다. 아들인 조 사장을 통해 간접적인 관여는 가능하겠지만, 사내이사직 박탈로 사실상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 조 회장이 원했든, 원치 않았든 이제 대한항공은 아들이 조 사장 체제를 갖추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조 사장 역시 앞길이 순탄치 만은 않을 전망이다. 과거 욕설 등의 논란과 함께 1998년 인하대 부정편입학으로 교육부로부터 학사 학위 취소 처분을 받은 상태이 때문이다. 이에 불복해 행정 소송을 진행 중이지만,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편, 예기치 못한 상황을 받아들인 조 회장은 미국에 머물며 대책 마련에 골몰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 따르면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뉴포트비치 인근에 위치한 별장에서 머물고 있다. 이곳은 미국 서부의 대표적인 부촌으로 유명하다. 조 회장이 2008년 당시 별장 구입을 위해 지출한 금액만 593만 달러(67억 3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주택구입자금의 2/3는 현지 은행 융자로 조달했으며, 나머지 1/3은 국내에서 외환반출신고 등 적법한 절차를 거쳐 조달했다. LA 현지에 파견된 대한항공 임직원들은 조 회장이 사내이사 재선임에 실패한 후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양혁기자 mj@dt.co.kr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왼쪽)이 지난 2018평창동계올림픽 성화 봉송행사에서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으로부터 성화를 전달받고 있다.<대한항공 제공>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왼쪽)이 지난 2018평창동계올림픽 성화 봉송행사에서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으로부터 성화를 전달받고 있다.<대한항공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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