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김양혁 기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주주 반대로 20년 만에 대한항공 회장직에서 밀려났다. 조 회장은 재계 총수 가운데 주주 반대에 부닥쳐 대표이사 자리를 내려오는 첫 사례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이제 조 회장 총수 일가 가운데 대한항공 경영진에 포함된 인물은 장남인 조원태 사장이 유일하다.
27일 대한항공은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조 회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하는 안건이 부결됐다고 밝혔다. 조 회장은 지난 17일 임기 만료로, 이날 주총에서 사내이사 연임을 도전했다.
우기홍 대한항공 대표이사는 "전체 의결권 9484만4611주 가운데 7004만946주, 73.84%가 참석했다"며 "이 가운데 찬성이 64.09%, 반대가 35.91%로 안건이 부결됐다"고 했다. 이어 "사전 확보한 위임장 등 대주주와 외국인 대주주 주식수를 오전에 파악했고, 다른 주주분들이 몇십만주, 몇백만주를 가져오더라도 결과 변동이 없다"고 덧붙였다. 대한항공 정관에 따르면 주총 참석 주주 3분의 2 이상 찬성표를 얻어야 사내이사직 수성이 가능한데, 지분 2.6%포인트(P)가 부족했다.
이로써 조 회장은 1999년 아버지 고 조중훈 회장에 이어 대한항공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지 20년 만에 대한항공의 경영권을 잃게 됐다.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해 1992년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후로는 27년 만이다. 대한항공 측은 "사내이사직 상실"이라며 "경영권 박탈은 아니다"고 했다.
이미 예고된 결과나 다름없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날인 26일 '캐스팅 보트'를 쥔 2대 주주인 국민연금(지분율 11.56%)이 조 회장 사내이사 선임에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공표했기 때문이다. 이미 앞서 해외 연기금과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 등 역시 조 회장의 연임에 부정적 입장을 내비친 만큼 국민연금의 반대가 사실상 이날 조 회장 연임을 무산한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조 회장이 사내이사 자리에서 밀려남에 따라 후폭풍이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항공 내 총수 일가 힘이 줄어든 만큼 주요 기관투자자들의 목소리가 거세질 수 있다. 이날 주총장에서는 조 회장이 사내이사 퇴진으로 챙길 퇴직금 수백억원도 반납해야한다는 지적과 함께 남아 있는 조원태 사장마저 경영권을 박탈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김양혁기자 mj@dt.co.kr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대표이사직 연임 향방이 가려질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참여연대가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사진은 박창진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장이 조 회장 사내이사 연임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