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그동안 선진국을 모방하면서 따라잡는 빠른 추격자로서 경제발전을 이뤄냈다. 이제 새로운 산업, 문화, 플랫폼, 규범 등을 창출하는 선도자로 세계적 모범의 되는 '제4차 산업혁명 선도국가'로 변신을 이뤄내야 하는 것이 국가적 과제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디지털 경쟁력은 갈수록 뒷걸음질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각종 수치에서 나타나고 있다. 영국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산하 연구기관인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가 내놓은 아시아 디지털 변환 지수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싱가포르, 일본, 홍콩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얼듯 보면 나쁘지 않은 순위 같지만 2017년 2위에서 두 단계나 하락한 순위다. 이 지수는 각 국의 디지털 인프라, 인적 자원, 산업 연관성,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디지털 전문가, 사업의 개방성 등이 평가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최근 발표한 '고잉 디지털 서밋(Going Digital Summit)' 보고서에서도 한국의 디지털신뢰도는 하위권 수준이다. 한국은 조사대상 31개국 중 28위를 기록, 한국보다 디지털신뢰도가 떨어지는 나라는 체코와 에스토니아, 폴란드 등 3개국에 불과하다. OECD의 디지털분야 신뢰성이란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한 결제나 소셜네트워크에 대한 개인정보 제공 등이 얼마나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측정한 것이다.
특히 디지털 경쟁력 구축에 있어 핵심이 될 수 있는 기업들의 활동까지 부진하다. 글로벌 IT 기업인 델 테크놀로지스가 전 세계 기업들의 디지털 혁신 현황을 조사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인덱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기업 22%가 아직 디지털 혁신을 시작하지도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 대상 42개국 중 한국은 37위로 하위권에 속했다.
기업들의 활동을 뒷받침할 정부도 마찬가지다. 2000년대 들어서 한국은 전자정부의 토대가 된 전자정부법을 세계 최초로 제정한 뒤, 발전을 거듭해 유엔(UN) 전자정부 평가에서 2010년 이후 '3회 연속 1위'라는 영광을 누렸고 OECD 공공데이터 개방지수에서도 2회 연속 1위에 올라섰다. 그러나 최근 들어 3위로 하락한 뒤 제자리걸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정부는 5G(5세대 이동통신) 최초 상용화에 올인하고 있지만 자칫 사상누각이 될 판이다. 5G 인프라가 깔리더라도 이를 활용할 콘텐츠와 기술적 뒷받침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동력이라 할 수 있는 AI(인공지능), 클라우드, VR(가상현실), 블록체인 등의 기술과 시장은 이미 해외 기업에게 잠식당하고 있다.
또 5G 네트워크 활용에서 주요 기기로 꼽히는 드론 시장마저 이미 중국이 DJI 등을 필두로 선두에 깃발을 꽂은 지 오래다. 자율주행차 기술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유력 기술조사업체인 내비건트 리서치가 자율주행차 출시가 예상되는 20개 회사에 대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를 보면 구글, GM, 포드 등 미국 기업이 자율주행차 상용화 경쟁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현대차는 일본 도요타나 중국 바이두 등에도 밀려 10위권 밖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인터넷, 모바일 서비스와 결합된 자율주행 기술이 빠르게 확산될텐데 카풀과 같은 모밀리티 산업마저 각종 이해관계 때문에 진전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다른 국가들은 이미 증기기관과 고속도로를 깔고 있는데 한국만 인력거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도입이 막히고 있는 것과도 같다.
사실 현재 우리 사회는 다양한 개혁과 실험을 하기에는 크고 작은 기득권과 다양한 이해집단 단체들이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어 쉽지 않다. 과거 한국이 전쟁 후 폐허 속에서 개혁과 개방을 통해 빠른 경제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도 이를 방해하거나 지연시킬 기득권 및 이익집단 세력의 파이가 작아서였다고 볼 수 있다.
한국도 다시 한 번 도약하기 위해서는 '파괴적 혁신'이 필요하다. 한국 대통령들 대부분이 말로가 좋지는 않았지만 임기 당시 현상 인기에 집착하기 보다는 욕은 먹더라도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들에게 역사가 후한 평가를 주고 있다. 미래보다는 과거에만 매달린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 같은 바람을 기대한다면 지나친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