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용 IT솔루션 대표 기업 한국오라클이 시장지배력 약화와 실적 저하, 세무조사에 CEO 사임까지 다중악재를 맞아 흔들리고 있다. 내부 갈등이 커지면서 작년 노사문제가 표면화된 데 이어 김형래 한국오라클 사장(사진)이 최근 사임의사를 밝히면서 리더십 위기까지 맞았다. 부사장 3명을 포함한 주요 임원 10여 명도 최근 사임한 것으로 확인됐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2014년부터 한국오라클을 이끌어온 김형래 사장이 최근 사임의사를 밝혔다. 당분간 톰 송 한국오라클 부사장이 회사를 이끌 예정이다. 김 사장이 개인적 이유로 사의를 표명했다는 게 오라클의 공식 설명이지만 업계에서는 사실상 경질로 받아들인다. 실적 악화, 노조 갈등 등에 대한 책임이 이유로 거론된다.
김 사장은 1983년 삼성그룹 공채로 삼성전자 HP사업부에 입사한 후 한국HP에서 2004년까지 근무하다 BEA시스템즈코리아 대표를 역임했다. 그 후 회사가 오라클에 인수되면서 2008년 한국오라클로 자리를 옮겨 DBMS(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 영업조직을 이끌다 2014년 6월부터 사장직에 올랐다.
한국오라클 노조는 작년 5월 결성돼 83일간 파업을 하는 등 회사와 갈등을 빚어왔다. 업계 관계자들은 수많은 M&A를 거치며 다양한 출신들이 모인 한국오라클이 내부 소통이 쉽지 않은 구조였다고 분석한다. 여기에다 2010년 이후 임금이 사실상 동결된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오라클은 다국적 기업 중 임금 수준이 높은 편이었으나 오랜 기간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중하위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 때문에 내부 불만이 높아졌지만 지사장의 역할이 사실상 영업대표 정도에 머물다 보니 본사 조율도 쉽지 않은 구조였다. 노사갈등은 본사의 인사정책·처우에 대한 국내 직원들의 반발이 근본적 배경으로 꼽힌다. 이런 상황에서 평가, 인사, 인센티브 배분 등을 둘러싸고 내부 갈등이 커진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김형래 사장 사임설이 얼마 전부터 들리기 시작했다"면서 "직접적 원인은 실적악화와 노조갈등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근본적 문제는 최근 IT시장이 클라우드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회사 위치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단일 DBMS를 중심으로 통합 시스템을 구축하던 기업들이 복수 DBMS, 다양한 마이크로서비스 형태로 시스템을 바꾸면서 오라클 같은 과거 강자들이 AWS, MS, 구글 등 클라우드 3대 기업에 주도권을 이미 내주고 있다. 경쟁사인 SAP이 차세대 ERP(전사적자원관리)에서 '탈 오라클 DB'를 선언하면서 오라클은 양쪽의 공격을 받고 있다. 오라클 로열티가 높던 기업이 타사로 옮겨가는 사례들이 나오고, 작년 매출도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영업조직의 클라우드 실적 부풀리기까지 문제가 됐다. 국내 공공·금융기관 명의의 가짜 납품계약서를 작성해 클라우드 서비스 매출을 부풀린 것이다. 실제로 최근 사임한 부사장 중 한 명은 이 문제로 정직 조치된 후 그만둔 것으로 전해졌다.
IT업계 한 관계자는 "다국적 기업은 인센티브 비중이 높다 보니 실적 부풀리기 문제가 많았는데 클라우드 실적압박이 심하다 보니 이런 상황까지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대부분 기업은 인센티브 실적 기준을 계약이 아닌 입금 시점으로 바꿔 이를 걸러내고 있다.
한국오라클은 조세회피 혐의로 국세청 세무조사까지 받고 있다. 이 회사는 2008년 유한회사로 전환한 후 실적, 배당금 등 경영정보 등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국세청은 한국오라클이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조세회피처를 통해 약 2조원의 조세를 회피한 혐의로 2016년 3147억원의 법인세를 부과했다. 회사 측은 이에 불복해 법적 소송 중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많은 다국적 기업이 세금회피를 위해 버진아일랜드, 파나마, 코스타리카 등 조세회피처에 모회사를 만들고 한국지사를 자회사로 두는 방법을 쓰고 있다. 또 한국 지사가 있으면서도 국내 사업 관련 계약을 본사나 아태지역 회사와 직접 맺는 방법도 동원한다.
복합적 위기상황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시장 주도권이 흔들린다는 점이다.
다국적 IT기업 한 지사장은 "AWS·MS·구글 3사는 이미 자본투자와 클라우드 생태계 조성에서 후발기업과의 격차를 크게 벌리고 있다"면서 "DBMS 의 독점적 지위에 의지해온 오라클의 입지를 지키기 쉽지 않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