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박정일 기자] 다음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삼성전자를 비롯해 현대차그룹, 한진그룹 등 재계에 비상이 걸렸다. 액면 분할에 따른 주주 숫자 증가와 외국계 헤지펀드의 공세 등으로 예기치 못한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11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달 26일 열린 이사회에서 안건을 의결한 이후 수시로 관련 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경기도 수원 본사 등에서 대책 회의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장 오는 20일 주총 개최를 앞두고 가장 큰 걱정은 공간 확보다. 한국예탁결제원의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삼성전자의 주주 수는 76만1468명으로 전년 말보다 5배 가까이(61만7094명, 427.4%) 증가했다.
이는 작년 1월 말 발표한 50대 1 비율의 주식 액면분할 때문이다. 삼성전자 측은 한때 주총 장소로 잠실실내체육관 등 대형 행사장을 빌려 개최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일관성과 연속성, 교통편의 등을 감안해 작년과 같은 서초사옥으로 최종 결론 내렸다는 후문이다.
이와 함께 액면분할 이후 주가가 급락하면서 주주들의 불만이 커진 것도 회사 측으로는 큰 부담이다. 액면분할 적용 직전인 지난해 4월 27일 5만3000원(종가·액면분할 전 기준 265만원)이었던 주가는 올 1월 4일 3만6850원까지 떨어졌다. 이후 다소 회복했지만 지난 8일 종가는 4만3800원으로 아직 소위 '본전'도 찾지 못한 상태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IR 담당 부서에 주가 하락에 대해 강한 어조로 항의하는 주주들이 늘고 있어 이들이 주총장에서 회의 진행을 '방해'할 가능성도 있다. 일부 관계사의 노조 와해 의혹과 삼성전자서비스의 임단협 난항 등에 따른 노조원들의 시위 등도 불안요인으로 꼽힌다.
다른 대기업들도 주총을 앞두고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과 세 싸움을 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의 경우 최근 미국의 의결권 자문기관 글래스 루이스의 지지를 얻어 한숨 돌리는 분위기지만, 마음을 놓을 수 는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엘리엇은 지난 7일 자사가 추천한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사외이사 후보를 소개하는 영상을 공개하고 주주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내 행동주의 펀드 KCGI와 대결 중인 한진그룹 역시 마찬가지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한진칼·한진·대한항공 3사 외 나머지 계열사의 임원직을 내려놓기로 하는 등 주주들의 표심을 잡으려고 애쓰고 있지만, 조 회장의 이사 연임에 반대하는 KCGI의 공세도 만만찮다.
실제로 KCGI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한진칼 경영진이 법원의 가처분 인용 결정에도 주주총회 소집을 위한 이사회를 의도적으로 미루는 등 월권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주주들의 권한이 커지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이를 이용한 외국계 자본의 '먹튀' 우려 역시 커지고 있다"며 "국내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경영권 보호 장치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작년 3월 23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49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사회 의장인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